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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Seoy Oct 20. 2021

[ 3-1 ] 길렝바레는 처음이라

응급실 도착

검사: 걷기 테스트, MRI, CT촬영



A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몸 상태는 집에서 출발했을때보다

훨씬 안 좋은 방향으로 점점 심각해졌다.


내 또래의 의사가 다가와

그 동안의 증세들을 이것저것 물었다.

응급실에 오기 전에 이상했던 내 몸 상태를 설명했고

곁에서 내 모습을 지켜본 엄마도 같이 설명했다.

의사는 운동 테스트 몇 가지를 시켜보았다.


가만히 서있기,

눈 감고 서있기,

평소처럼 걷기,

병원 바닥에 그려진 노란 일직선 따라 걷기.


분명 쉬운 동작인데

막상 하려니 몸이 내 몸같지 않게

좌우로 불안하게 비틀거렸다.

어지럼증이 심하고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몇 발자국 떼지도 못하고

병원 바닥에 그대로 픽 주저앉았다.

한 번 땅으로 쓰러진 몸이 쉽사리 일으켜지지 않았다.

어깨보다 아래로 내려간 머리는 왜 그리 무거운지.

머리를 따라 상반신이 바닥으로 기울었다.

몸을 바로 세우려고 애써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많이 어지러워요." 라고 하소연하듯 울먹이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못 일어나겠어요.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저렇게 자세를 바꿔가면서

바닥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제는 일어서지도 못했다.


혼자 힘 만으로 도저히 안돼서

엄마와 의사가 나를 양쪽에서 부축했다.

부축을 받아도 온 몸이 아래로 가라앉을 것처럼

바닥을 향해 축 늘어졌다.

그 상태로 힘겹게 침대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에도 너무 어지러웠다.


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앞 이마를 붙잡았다.

자리에 도착하자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고

허겁지겁 머리를 베개에 갖다댔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메스꺼움. 극심한 어지럼증이 멈추지 않았다.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서

다른 환자들처럼 세가지 검사를 받아야 했다.

MRI, CT촬영 그리고 척수액 검사.


앞에 두 가지 검사는 촬영이니까 괜찮았지만

척수액 검사는 이름만 들어도 무척 겁이 났다.

사람의 척추에 주사를 꽂을 수 있다니?

그 느낌은 평생 알고 싶지 않아...

그렇게 죽을만큼 아팠던 와중에도

그거 하나만 빼고 나머지 두 가지 검사를 받기로 했다.



촬영검사 과정에 대해



아까 병원바닥에 쓰러져서

혼자 일어서지 못하던 상태로

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의사의 지시로 촬영검사를 받으러

촬영실로 들어갔는데.

촬영기계에 일체형으로 달려있는 침대 위로

내가 직접 몸을 굴려서 들어가야했다.

마비환자를 안전하게 옮겨줄 사람이 부족했던 것이다.

상체조차 스스로 일으키지 못할 만큼 심각했는데

결국 스스로 기계 안으로 들어가야했다.

옮기는 와중에 힘이 빠져서

몸이 전체적으로 덜덜 떨렸다.

나는 아슬아슬 위험하게 자리를 옮겨 누웠다.

두통과 메스꺼움에 짓눌리면서 가까스로 촬영을 마쳤다.


이런 비슷한 상황은 나중에 세 달 뒤 

B병원의 엑스레이실에서 찍을 때도 또 있었다.

이렇다보니 촬영검사실들은 다 이렇게 열악한가 싶다.


B병원에서는 양쪽 발목을 촬영하러 갔었다.

한쪽 발목의 마비가 심각해서 접질린 줄 몰랐다가 

퉁퉁 부은 상태였다.



발목 촬영을 위해 또 위험한 일을 감수해야했다.

계단같은 곳 위에서 한 쪽 발목으로 서고

한 자세로 몇 초간 버텨야 했다.

잠깐이라도 똑같은 자세를 유지하려면

근육 힘으로 버텨야 하는데 

마비가 아직 많이 남아서 버틸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마찬가지로 마비가 덜 풀린 팔에도 힘이 부족해서 

벽에 봉이 마련되어 있어도 제대로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내 힘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겨우 3초 이내였다.

3초를 넘겨도 손의 힘은 스르륵 풀렸다.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위태롭게

내 등이나 어깨를 두 손으로 받쳐줘서 찍었다.

자칫 내 손의 힘이 빠지면

내 몸이 너무 무거워서 그냥 떨어질 수도 있고

엄마쪽으로 몸이 엎어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다 끝마치고 무사히 계단에서 내려와

내 휠체어에 앉았지만 기분은 땅 밑으로 푹 꺼져버렸다.

굴러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분위기에 상처받았다.


내가 위험한 상황들을 직접 겪어보니

마비환자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필요해보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마비된 근육에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감각은 있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의 균형을 잃을 수 있고

높은 곳은 당연하고

낮은 곳에서도 어처구니 없게 낙상을 하면

다른 환자들보다 크게 다칠 우려가 있다.

감각이 없어서 다쳐도 다친 줄도 모른다.


내가 마주했던 상황들이 매우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꼭 한번 언급하고 싶었다.




(다음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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