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러피셔 오진, 응급실로 출발
언제나 그랬듯
이러다가 슬그머니 낫겠지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통증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힘든 치료를 받았으니
오늘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누워있으라고 했다.
나는 치료사의 말대로 누워서 잠을 청했다.
정신없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지만
미련하게 참고 견뎠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기 힘든 통증보다
내 눈치없는 믿음이 훨씬 더 앞섰다.
그리고 내 몸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평소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와 같은 운동을 해왔고
하루 한 두 시간 걷기와 계단 오르내리기가 일상이었다.
도수치료 받은 다음날 오후.
잔잔했던 초반의 통증이
어느순간 미친듯이 날뛰며 파괴적으로 변했다.
내 몸에 대한 기대도, 신뢰도
전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내 멘탈도 부서졌다.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되는 것처럼
손발이 저리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났지만 치료 전보다 더 아픈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도수치료가 전혀 먹히지 않는 종류의 통증이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큰 병원으로 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후까지 버티다가 통증이 극에 달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때 나를 담당했던 치료사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잠시 부재중이었다.
대신 데스크의 안내원이 받았고 메모를 전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너무 아팠지만 객관적으로 내 상태가 어떤지 이성적으로 읊다가
한창 진행중인 통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엉엉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한마디 한마디 숨도 가빠져서 제대로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내 이런 불가항력적인 감정에
안내원은 휩쓸리지 않고 바로바로 대답을 해줬다.
강철 같은 데스크 안내원 덕분에 힘겹게 메모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온 몸이 ‘잠금’상태가 되어갔다.
나의 메모는 '어제 치료를 받았는데 지금도 너무 아프다.'였다.
전화를 끊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시선으로 눈 앞에 어지러운 천장을 봤다.
방금 막 퇴근한 아빠가 외투를 벗지도 못하고
내 전화통화에 놀라 내 방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방금 내 말들을 듣고 사태파악을 한 아빠가
평소 잘 알고 있는 명의가 있다며
지금이라도 가서 침을 맞고 오면 어떻겠냐고 했다.
원래 침을 무척 싫어했지만 너무 아프니 이것저것 가릴 수 없었다.
그리고 나만큼 병원에 대해 까다로운 아빠가 명의로 인정한 의원이라면
최악의 경우 효과는 없더라도
악화시키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픈 몸을 일으켰다.
그때 내 몸은 이미 마비가 퍼진 상태라서
평소보다 훨씬 무거워졌다.
집을 나서는데 난간을 잡지 않으면 계단 아래로 구를 것 같았다.
하루전 도수치료를 끝내고 집으로 왔을 땐 몰랐는데
이제는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가기조차 어려워졌다.
계단을 다 내려온 다음 두발로 평지를 디뎠더니
좌우로 불안하게 비틀거렸다.
놀란 아빠가 내 팔과 등을 붙잡았다.
차 안으로 잘 접히지도 않는 몸을 겨우겨우 집어 넣었다.
시트에 앉고, 다리 한 짝씩 들어올렸다.
약 15분 걸려 도착한 한의원 주차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이런 상태가 아빠도 나도 낯설었다.
얼른 들어가서 침 치료를 받고
이 말도 안되는 통증이 완화되기를 기대했다.
치료실에서 침을 꽂아주며 나의 상태를 살피던 의사는
신경계통 질환 같다며
생전 처음 듣는 병명을 말했다.
밀러 피셔라고.
침 치료를 한참 받고 난 다음 잠시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이 진료실에서 커피 한 잔을 대접하면서
갑작스런 통증에 많이 놀랐던 내 마음을 위로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또 일단락 된 줄로만 알았다.
이젠 진짜 괜찮아진걸까? 드디어 치료된건가?
의사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처방약을 한 뭉치 받았다.
데스크에서 다음 예약과 결제를 할 차례였다.
카드를 들고 서있던 아빠 옆에서
나는 갑자기 가만히 서있기 어려울 정도의 강렬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곧바로 구역질이 시작돼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데스크에서 바로 보이는 화장실의 변기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품에 안고 욱 욱 소리를 냈다.
먹은 것도 없이 빈 속이고
충분히 다 뱉어냈는데도 자꾸만 헛구역질을 했다.
이 와중에 내가 기억하는 건
변기가 다행히도 내가 끌어안아도 될 만큼
완벽하게 깨끗했다는 점이다.
진료실에서 마신 묽은 커피 한 잔도 덩달아 내뱉고 말았다.
확실히 음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속이 불편해서 다 게워냈지만
이제는 심리적으로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침을 맞고도 몸은 낫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땐
땅 위에 두 발로 서서 몸을 지탱하는 일조차 힘겨웠다.
저녁에 침을 맞았으니 내일까지 더 지켜보려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이제는 잠을 전혀 잘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너무 아파서 크게 심호흡을 해봤더니
통증이 무서울 정도로 오히려 강해지고 선명해졌다.
갑자기 또 우욱.
침대에 누워있다가 아슬아슬하게 방바닥에 토를 하고 말았다.
변기로 기어갔다. 역시 또 토했다.
이틀동안 속이 안 좋아서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화가 났다.
머리는 어지럽고 다리는 힘이 빠지고.
어차피 실컷 게워내고 침대로 돌아갈 힘도 없는데!!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 스르륵 등을 붙이고 그냥 누워버렸다.
졸린 눈 비비고 화장실을 들여다보던 엄마 아빠는
어떻게 해줄 방법을 몰랐다.
나는 눈만 겨우 뜨고 다급하게 말했다.
이제라도 응급실을 가야겠다고.
아빠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엄마도 같이 가달라고 했다.
갈 준비를 해야하니 우선 바닥에서 일어나보라고 했다.
무거워진 몸을 간신히 일으키니 몸이 옆으로 크게 기우뚱.
코트라도 걸치려고 화장실을 나와 내 방으로 갔다.
비틀비틀. 걸음이 술 취한 사람처럼 제대로 걷지 못했다.
발바닥이 땅에 닿아도 딱딱한 바닥 느낌보다는
구름 위에 둥둥 뜨는 느낌으로 착각이 들었다.
엄마도 대충 외투를 걸치고 나와
방에서 걸어나오는 나를 부축했다.
내가 엄마와 계단을 한칸 한칸 내딛는 동안
아빠는 현관앞으로 차를 세웠다.
한의원 갔을 때 처럼 똑같이 차 시트에 엉덩이를 겨우 걸치고
두 다리를 차례로 들어올려 차 안 바닥에 두 발을 집어넣었다.
예전에 스스로 했던 모든 자세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출발.
가는 동안 또다시 두통에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이 동반됐다.
언제 또 구역질을 할 지 몰라
엄마가 챙겨온 비닐을 한 손에 쥐고
머리를 뒤로 기댄채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차가 이리저리 흔들릴적 마다
더 어지러워져서 멀미를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그 병원 응급실은 코로나 환자만 받고 있었다.
119에 전화하면 가까운 응급실을 안내해줄 거라고 했다.
그래서 A병원을 가게 됐다.
잠시 다른 병원도 고려해봤지만
시간이 늦은 자정 무렵이고 다급한 마음에
선택의 여지없이 119에서 소개한 A병원으로 출발했다.
(다음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