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할 수 없었던 순간들
"이제 손가락이 움직이네"
의사선생님의 말이 들림과 동시에
내 정신이 드디어 돌아왔다.
손가락이 가늘게 움찔움찔.
나머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대한 투명바위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내 몸같지가 않아서 공포스러웠다.
인공호흡기의 목관이 성대를 누르고 있어서
말 한마디 못했다.
나는 한참동안 악몽을 꿨다.
악몽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던 와중에도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하나의 거대한 공간을 여러 칸으로 나누고
커튼 한 겹으로 한 사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때문에 당연히 소리와 냄새가 바로 곁에서 느껴졌다.
다양한 소리. 똑같은 냄새.
내 양옆과 앞 맞은편,
그리고 벽이었는지 거대한 기계가 서있었는지
내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사방에서 들리는 온갖 소음들로 가늠해볼 때
내 자리 뒷쪽에도 중환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니 삶과 죽음을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환자는 가래를 스스로 내리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환자분~! 에흠 해봐요! 에흠! 에흠! 따라해봐요!"
"싫어도 해야해요 이거~ 안하면 할아버지 숨 못 쉬어!"
계속 들리는 에흠 소리를 내는 간호사 목이
점점 쉬는 것 같았다.
일시적으로 심정지가 왔다가
두번의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어떤 할머니.
목숨이 위태로워진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계속 자리를 지키던 간호사들,
어디서부터 달려왔는지 금방 멀리서부터 합류한 듯
정신없이 뛰어들어오는 발소리들.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숨 쉬어요 숨! 할머니 이름 뭐예요 이름!”
“눈 떠요! 눈을 왜 감아! 눈 떠!”
“이름 말해봐요. 할머니 이름!”
할머니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말을 계속 시켰다.
상황이 무척 긴박했다.
죽어가는 몸에 생명을 다시 끌어다놓는 과정이
너무도 생생하게 들렸다.
그들이 아무리 인수인계를 해도
나는 다시 새로운 그들에게
적응과 더불어 누락된 사항들을 직접 말을 해야 한다.
새로운 체위변경을 인계받지 못하거나
어디가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운지 등등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생략된 적이 있다.
그들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
나의 경험을 바탕삼아
한 가지를 기록에 같이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늘 마음이 불안했다.
곁에 사람이 없어서 더 힘들었다.
하지만 담당자들은 두 환자를 동시에 관리하니까
한 환자만 지켜보지 않는다.
나는 다시 새로 온 담당자에 맞추고 적응해야 했다.
다들 이곳 저곳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공간에
죽은 듯이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기가
참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주로 천장만 바라보다
무슨 소리가 들리면 그곳으로 눈길 한 번 던져볼 뿐이다.
손이라도 움직였으면 뭔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냥 누워서 숨만 쉬었다.
일단 나는 내 평생 내 목에 구멍을 낼 줄 몰랐다.
지금 내 목의 상처가 아직도 낯설다.
그리고 이번 경험으로
목에 호흡기를 삽입하면
성대가 눌려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맙소사. 진짜로 말을 못하니 끔찍했다.
담당자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꽤 빈번하게 생겼고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다.
운이 좋아서 내 입모양을 잘 읽는 능력자를
그날의 담당자로 만나면
그때 원하는 만큼 말을 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오로지 입모양만 보고
어떻게 알아맞출까?
나에게 그들은 구세주였다.
만일 내 말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되도록이면 단어만 짧게 하나씩
분명하게 라도 말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말은
예의를 갖출 만한 여유가 없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띄어서 말하는 일이 힘에 부쳤다.
이 때문에 어떤 담당자는 나보고
왜 반말을 하냐며 갑작스럽게 따져 물었다.
나름 힘겹게 단어 하나로나마 시작한 대화였는데...
내 입장에선 그것이 존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말도 아니기 때문에 무척 억울했다.
말 그대로 아기들이 “사탕” 아니면 “과자”같은
가장 필요한 단어들만 말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근데 왜 아까부터 자꾸만 반말이세요?”
다른 환자의 담당자도 옆자리에서 들리는 소리에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내 자리로 다가왔다.
불만스러운 말투로 질문을 던져 공격을 하는 담당자.
옆에 등장한 또다른 사람.
나는 반말을 하려던게 아니고 말을 끊어서
제대로 읽을 수 있게 한마디씩 말한건데.
안그래도 말을 할 때마다 힘이 쭉쭉 빠지는데
목소리는 안나오고... 억울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를 입원 시작부터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내가 말을 단어만 내뱉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곁에 없어서 무척 힘들었다.
내가 중환자실에 ‘갇혀’있다는 불행한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겨우 한 단어 한 단어 전달하기도 힘에 부치는데
갑작스런 공격까지 받은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나는 고개를 완전히 돌려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담당자 차례가 올 때까지
소통하지 않았다.
이 날이 생각날 때마다 그날처럼 똑같이 화가 난다.
한국 병원에는 아직 홍채인식 키보드 컴퓨터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대신 간호사들은 내 입모양을 읽기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ㄱㄴㄷ 글자표를 손수 준비해왔다.
내가 할 말이 있다고 입을 오물거리면
해당 담당자가 그 글자표를 가져와준다.
그리고 나란히 줄을 선 모음과 자음들 앞으로
볼펜 촉이 천천히 지나가다가
내가 고개를 끄덕하면 멈췄다.
간호사는 내가 선택한 자음 하나 모음 하나를
조립해서 단어를 알아냈다.
입모양만으로 전할 수 없는
된소리 발음들과 소리가 약한 단어들을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은 글자에 도착할 때까지
움직이는 펜을 눈으로 따라가려니
멀미가 나서 고역이었다.
눈이 무척 피곤해지고
그만큼 예민해지고 신경이 쓰여서
속이 금방 메스꺼워졌다.
정신적인 피로를 감당하지 못해서
그걸 하고나면 암벽등반이라도 한 것처럼
몸 전체가 힘이 풀리고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그러면 수 차례의 실패 끝에
종이를 통한 소통마저 포기해야 했다.
가끔 내 눈의 속도보다 너무 빠르거나
내가 선택한 글자를 잘못 알아차리면
타이밍이 어긋나기도 했고 또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내가 어떤 단어를 가리켜야 하는지
갈등하다가 놓쳐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내 생각을 말할 수 없으니
고민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눈 앞의 글자가 내 머릿속의 글자를 가려버렸다.
글자를 알려주려다 단어를 까먹어버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글자를 보는 동안 소모되는
힘과 긴장을 내 몸이 견디지 못했다.
이와 관련된 일이 하나 있다.
나는 물을 가끔 생수라고 말하곤 했다.
목이 마르기 때문에 생수를 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담당자에게 글자표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다른때처럼 펜으로 담당자는
ㄱ부터ㅣ까지 훑을 기세로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순조로울 줄 알았는데
내가 중간에 순간 아차 했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굳이 생수라고 말할 필요가 있나?
물은 한 글자 뿐인데?
이미 ㅅ다음,ㅐ를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나는 당황했다.
다시…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처음부터…다시…라고 너무 외치고 싶었다.
아 다시 생각해도 그때 너무 힘들었다.
글자표를 통한 소통 에피소드와는 별개로
이 날부터 나는 입 안에 물에 적신 거즈를
물고 있을 수 있게돼서 다행이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이후로
물을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어서
목이 무척 말랐기 때문이다.
목에 갈증이 심해도 콧줄로 물이 공급되고 있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무척 해결이 시급했던 여러 문제들 중 하나였다.
또다른 일 하나.
내 다리에 마비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골반 근육이 무릎을 양옆으로 내려놓으면 무척 아팠다.
게다가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펴고 있어도
마비풀림 때문인지 똑같이 골반근육이 아팠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아팠을 때
민망함을 무릅쓰고 담당자에게
고양이 꾹꾹이처럼 주먹을 쥔 손으로
둔부의 근육을 주물러 주기를
미안한 마음으로 부탁을 했다.
하지만 이 꾹꾹이 치료법의 효과가 얼마 못 갔고
또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무릎이 바깥을 향하는 자세를
외전이라 부르는데
외전만 시키면 아프니까
반대방향인 내전도 한번씩 시켜야 했다.
이때 나처럼 내전을 시켜야 통증이 완화되는 환자는
보통 환자들과 달리 특정한 자세를 만들어줘야 한다.
양 다리를 뻗은 상태에서
한쪽 무릎만 세우고
베개를 다리와 난간 사이에 받쳐
바깥으로 벌어지지 않도록 막아주면 된다.
그러면 골반근육이 하나도 아프지 않다.
문제는 이것을 의사가 나에게만 알려주고
다음 간호사에게는 정작 인수인계를 하라고
정식으로 지시를 내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담당자가 바뀌면서 그 자세에 대한 설명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너무 아픈 나머지 소리가 안 나오는 입모양으로
체위변경을 수정해달라는,
그들에게는 다소 무리한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추가업무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전형적인 자세 몇 가지가
이미 자리잡고 있는 바람에
내가 설명하는 새로운 자세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베개를 무릎과 난간 사이에
‘세워서’ 꽂아달라는 부탁일 줄은 미처 몰랐는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베개를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다음 회진때까지 통증을 참아낼 재간이 없던 나는
계속 이어지는 소통 실패에 완전히 좌절했다.
한 번 터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문제해결 방법은 안 보였다.
간호사들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한참 후에 내 입모양을 잘 읽는 다른 담당자가
다시 시도를 한 끝에 성공.
아까 무음으로 목청껏 울어서
퉁퉁 부어버린 윗 눈꺼풀을
아래로 포개어 닫고 숙면했다.
엄청 안도했다.
비로소 악몽 같던 통증을 해결했구나 하고.
나도 내가 전신마비인 것이 불편한 상황이고,
근무자들도 추가업무를 해야 하니까
매우 버거웠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 외에는
환자의 무거운 몸을 들어올리려 하지 않는데
나 때문에 추가업무를 하니까
모두가 힘들어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기존 체위변경의 시간간격이
특히 나 같은 전신마비 환자가
한 가지 자세로만 버티며
다음 자세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려면
매우 고통스럽고 시간도 길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몸에 힘이 들어간다면
스스로 알아서 이리저리 뒤척이기라도 할텐데.
사람이 와서 나를 한번씩 뒤집고 움직여줘야 하다니.
낙상주의 욕창주의 환자라니.
그때는 그것이 현실이었지만
도무지 현실적이지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나를 체위변경 해주며
어느 간호사가 말하던 것처럼
나는 그곳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특별한 환자였다.
몸뚱이만 중환자, 의식은 일반인.
(다음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