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물음표로 점철되어 있다. 평생을 남과 다르다, 특이하다,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다행히 그 말에 상처받진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이상했으니까. 그들에게 나는 불가해한 존재였겠지만, 그건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평생을 고군분투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민이 고질병이 되고, 그 병이 도져 더 이상 삶을 영속할 수 없었을 때 깨달았다. 세상에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존재한다는 걸. ‘이건 내 혼자 끙끙 앓는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죽기 일보 직전이 돼서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모든 용기를 끌어올려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 병원에 갔던 날을 기억한다. 의사가 ‘당신은 우울증입니다.’라고 심각하게 말하면, 나는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네에?”라고 답하겠지? 동공이 흔들리고 손이 덜덜 떨리려나? 온갖 드라마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의사는 평온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마치 밥 먹었냐고 물어보듯.
“어떻게 오셨어요?”
“우울증이랑 공황장애로 왔어요.
“본인이 우울증이랑 공황장애라는 걸 어떻게 알죠? 다른 기관에서 진단받은 적 있나요?”
“우울증으로 상담센터를 다니고 있는데, 상담사 분이 제가 공황장애일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그렇군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질문은 없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당황한 나와 달리 의사는 평온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내 삶을 통째로 쥐락펴락하는 그 병이 그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아침저녁으로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내원하라는 말을 끝으로 진료가 끝났다. 한 10분 걸렸나? 이 10분을 위해 수년간 고민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인상 깊었던 건 진료 시간이 아니라 병원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사람들은 제 갈길을 찾아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모두 정상인이구나. 나는 정신병자인데.’ 그렇게 생각하자 손에 쥔 약 봉투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약 봉투를 외투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정신의학과’가 보이지 않도록.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정신과에서는 처음부터 약을 처방해주진 않는다. 그러니 내가 초진에 약을 처방받은 것은 ‘당신은 우울증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의사에게 내 병명이 무엇인지, 내가 먹는 약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떤 답변이 돌아올지 무서워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환자로서 당연한 궁금증이었는데, 당시에는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떤 답변이 돌아올지 무섭다고 표현했지만, 무엇이 어떻게 무서운 건지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다른 환자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일반적인 공포 내지는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문가의 진료를 받고,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건 정말 무식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용감한 생각이었다. 우울증 진단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겪은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힘든 일들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때마다 약을 챙겨 먹는 일, 꼬박꼬박 병원에 내원하는 일, 의사와 매주 똑같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 등 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직면해야 했다. 그것들은 많은 용기와 노력, 감정 소모를 요했다.
그중 가장 힘든 일은 주변인들에게 내 상태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 누가 봐도 이상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 보았다. ‘요즘 뭐해? 무슨 일 있어? 왜 쉬고 있어?’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거운 자물쇠를 입에 걸어둔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히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그걸 견뎌낼 자신도 없었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면 분명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겠지? 하지만 나도 그 답을 찾지 못해 병원을 찾아간 거였다.
의사는 말했다.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것은 ‘내가 왜 우울한 걸까?’ ‘내 삶은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를 고민하는 겁니다.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예요. 그런 생각에 매몰되면 더욱 힘들어집니다. 의도적으로 피하세요. 삶의 실재에 집중하세요.”
하지만 그건 의사의 말이었다. 애석하게도 우울증에 관한 의학적 치료와 사회의 인식 사이에는 큰 골이 존재했고, 그걸 마주하는 건 오로지 환자의 몫이었다. 우울증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우울증’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아마 나를 이해하고 돕기 위함이었겠지. 하지만 나도 그게 뭔지 몰라서 병원을 다니는 거였다.
“제발 아무것도 묻지 말아 줘.”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나도 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 설명하기 힘들어. 많이 답답하겠지만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줄래?"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에너지가 있었다면 애초에 병원에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내게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다. “내가 언제까지 너를 기다려줘야 해?” 하지만, 이제와 변명하자면, 나도 몰랐다. 무엇이 문제인지, 뭘 하고 있는 건지, 치료가 되고 있긴 한 건지, 언제까지 하면 되는 건지, 내가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한 건지. 나도 알지 못해서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무엇하나 시원스레 듣지 못하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나. 그 깊은 골 사이에서 나는 점점 더 외딴섬이 되고 있었다.
덧) 병원 가고 약 먹는 게 많이 힘든 일인 건지 궁금하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우울증 치료는 장기간 이루어집니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소요되고, 그 기간 동안 매주 병원에 가야 해요.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또한 우울증 환자는 기본적인 생활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습니다. 저는 당시 제대로 먹고 자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약을 챙겨 먹고 병원을 다니는 건 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겨우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제대로 못 지켰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