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교차-3

목련차

by 하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낫나. 지붕 끝에서 떨어진 비가 구두 위로 튀었다. 본능처럼 발을 옆으로 치우며,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물 자국이 흘러내린 통유리가 눈에 들어왔다. 창 안쪽이 훤히 보였다.


창가에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두 손으로 잔을 감싼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바깥을 보는 듯, 아니면 마음속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듯. 그 얼굴을 오래 보고 있자니 문득 옛날 생각이 일었다.


목련차. 빗소리가 지붕을 두드리던 어느 저녁, 김이 하얗게 번지던 잔. 그 곁에서 미소 짓던 아내의 눈빛. 말하지 않아도 다 전해지던 기운이 있었다. 그 웃음 하나면 어떤 근심도 풀리곤 했지.


손목 위의 시계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오래된 금테. 바늘은 엇나가 있었으나,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놈도 고집이야. 나처럼.

아내가 힘겹게 돈 모아 건네던 그날의 기억이 가슴에 겹쳐졌다. 시간이 흘러도 곁에 있겠다던 말… 그 약속이 이 시계에 아직 남아 있는 게다.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우산을 접는 소리, 아이를 챙기는 손길, 전화를 붙든 얼굴들. 자리를 차지하려는 발소리가 정류장을 울렸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저들을 저토록 서두르게 할까. 기다려주는 이가 있어서겠지.


문득 마음이 허전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도 불 켜진 방은 없을 터. 웃음으로 맞아줄 이도 없을 터. 허, 저 분주함이 오히려 부럽구나. 누구를 향해 달려간다는 건, 그 자체로 힘이 되는 것인디.


“그래 고것이 인생이지…“


다시 창을 보니, 젊은 여자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웃음이 오래전 아내의 웃음과 포개졌다. 잠시 눈이 시렸다.


겉으론 여유로 보여도, 속은 다르지. 오래 빗속에 서 있으면 옷이 젖듯이… 나도 모르게 고독이 스며든 거야. 겉으론 티가 안 나도, 속으론 이미 흠뻑 젖어 있지.


“참 나도 많이 살았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서 있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발을 올렸다. 창밖 풍경은 빗물에 젖어 흐릿했지만, 그 흐림 속에서 무지개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 빛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 행복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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