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교차-4

무지개

by 하늘

비가 잦아들었다. 긴 시간 창문을 두드리던 빗줄기가 힘을 잃더니, 어느새 날씨는 한결 맑아졌다. 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햇살을 머금고 작은 유리처럼 반짝였다. 먹구름의 틈 사이로 빛이 흘러내리며 하늘은 분홍빛으로 물들었고, 그 위에 무지개가 느릿하게 걸렸다. 장면은 마치 누군가의 손길로 한순간 바꿔놓은 그림 같았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창가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노트북을 펼쳐놓고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드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탁 탁 탁 탁’


글은 늘 더디게 적히지만, 그 느림이 오히려 나를 붙잡는다. 글을 쓰는 일은 세상을 기록하는 일이자, 동시에 세상을 배우는 일이라 믿는다. 누군가의 작은 동작, 사소한 표정 하나에도 삶의 진실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창문을 통해 흘러가는 풍경이 내 문장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창가의 여자는 커피잔의 온도를 느끼며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지랑이처럼 떨어지는 빗물 처럼, 그녀의 눈빛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 보니 정류장의 한 노인이 있었다. 아까부터 보이던 사람이다. 어떤 사연이 그의 뒷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할까. 비에 젖은 어깨, 손목 위 느슨하게 흘러내린 낡은 시계.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존재였지만, 내 시선 안에서는 같은 프레임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노트북 모니터에 그들의 모습을 옮겼다. 여자의 미소, 노인의 망설임, 유리창에 흐르던 물방울. 따로따로 흘러가던 것들이 문장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서로 무관한 듯 살아가지만, 어떤 순간에는 이렇게 겹쳐 보인다.

빗줄기와 무지개가 같은 하늘 아래 놓이는 것처럼.


잠시 눈길을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무지개는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남은 빛의 흔적은 여전히 창문을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 본 풍경은 언젠가 다시 사라질 것이고, 여자의 미소와 노인의 시선도 이 순간을 지나가면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글 속에서는 다르다. 기록은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흩어지는 것을 다시 모은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삼킨 뒤,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적고 나니 마음이 묘하게 고요해졌다.


노트북을 덮자, 카페 안은 다시 음악과 잔 소음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내 안에는 오늘의 장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창가의 여자, 정류장의 노인, 그리고 핑크빛 하늘에 걸린 무지개. 그 풍경이 나의 하루를 완성시켰다. 글이 아니라면 사라졌을 순간들이었고, 글 덕분에 오늘은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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