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식빵
창문 너머 정류장에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비는 끊임없이 쏟아졌고, 그의 우산은 몇 번이나 뒤집혔다.
그러나 노인은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무너진 우산살을 천천히 펴고 다시 세웠다. 두 대의 버스가 와서 사람들을 태우고 떠났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커피 잔을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늘 시계를 확인하며 분 단위로 움직이는 나와 달리, 그는 느린 시간 속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어쩌면 저 노인의 여유가 부러운 걸지도 모른다.
그는 잠시 손목을 내려다봤다. 오래된 시계가 빗방울에 젖어 있었다. 바늘이 제대로 움직이는 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눈을 찌푸리며 그 시계를 보고 있었다. 시곗바늘의 느린 움직임이 노인을 느리게 만든 것일까.
그 순간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이러나저러나 방향만 맞으면 돼. 속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어릴 적 아버지는 종종 그렇게 말했다. 퇴근 후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말없이 자전거 체인을 닦던 손, 늦은 밤에도 식탁에 앉아 남은 반찬을 천천히 드시던 모습. 빠르게 성취하기보다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하루를 다독이던 사람.
창밖 노인의 뒷모습이 그때의 아버지와 겹쳐 보였다.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대에 놓인 밤식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종이봉투에 담긴 빵은 은은한 단내를 풍기며 손바닥을 따뜻하게 데웠다. 밖으로 나오자 비가 그쳐 있었다.
나는 봉투를 품에 안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의 점괘는 아버지인가 보다. 아버지와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는 점괘.
정류장에 서 있던 노인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 통창 너머로, 창가에 앉은 젊은 여자가 커피잔을 감싸 쥔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길이 스친 건 짧은 순간이었지만, 빗물 사이로 서로의 존재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