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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벼리 Aug 09. 2022

예술가 체질이 회사원으로 산다면?

직장인의 프리랜서 도전기 28.

어렸을 때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시범학교여서 특별한 점이 있었는데, 적성 검사를 통해 반 배정이 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항상 예술 분야 중에서도 음악이 1위였고 매번 음악반으로 배정되었다. 감사하게도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다양한 봉사 활동과 각종 음악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선생님의 무한 믿음 덕분에 대상도 여러 차례 수상하며 내가 가진 재능을 깨닫고 자신감을 얻을  있었다. 그리고 아쉬운 졸업식 , 학생들이 교실에서 선생님과 악수를 나누며 퇴장하던 순간이었다.  차례가 되어 선생님과 악수를 하려는데 선생님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너는 커서  훌륭한 성악가가 되거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음악 인생(?) 대한 기억이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 있다. 물론 꾸준히 밴드 활동을 하며 취미 삼아 노래를 불러 왔지만 꾸준히 갈고 닦지 않아 점점 퇴화되는 느낌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회사원이 되었을 때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작곡 학원에 덜컥 등록했던 적도 있다.


6시에 퇴근하자마자 저녁도 굶은 채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 문 닫을 때까지 피아노를 쳤다. 그때는 선생님들마다 피곤하지 않냐며 걱정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참새 눈곱만큼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기운이 나고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되는 일이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고, 이래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작곡의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고, 배우면 배울수록 웬만한 공부보다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때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미련이 남는 건 무조건 해보기로. 직접 해봐야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막연한 생각에 '난 잘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 바로 근자감이다.


노래를 좋아하고 음악도 즐겨 들어서 작곡 또한 잘할 줄 알았던 막연한 생각이 현실이 되었을 때, 작곡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다. 작곡이 단지 복잡하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게는 악상을 떠올릴 만큼의 음악적 영감이 부족한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이후로 회사 생활을 하며 배우고 싶었던 바리스타, 제빵, 속기 등등의 자격증을 취득하며 나름 열심히 산다며 위안 삼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당장에 무슨 도움이 되는 것들인가 싶어도, 축적된 경험들이 언젠가 빛을 발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배웠다. 깊지는 않지만 얇고 넓게 배워두면 어딘가에는 쓸 일이 있을 거란 믿음이라도 있었던 걸까? 하긴 요즘 같은 N잡러 시대가 올 줄 알았다면 더 많이 배워둬도 됐을 뻔. 배움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뭐든 배우고 있을 것 같다. 배움이 멈추는 순간 늙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죽'소리를 싫어한다. 예를 들어 "힘들어 죽겠네." 같은 말. 그리고 힘들다는 말도 잘 못한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에게도. 그런 내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나온다는 건 진짜 힘들어 죽겠다는 의미이다. 요즘 내 상태가 그런 것 같다. 회사에 8시간이 넘도록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회사원이 된 지 10년도 훌쩍 넘었는데 아직까지 이러나 싶지만 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건 무슨 일이지?


자문했지만 사실 정답을 알고 있다. 자아가 강하고, 에너지가 외부보다는 내부로 향하는 나 같은 사람은 회사 안에 있을 때 더욱 답답함을 느끼기 쉽다. 그래서 더욱 간절하게 퇴사를 원한다. 영원한 퇴사. 지금 당장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이 지옥 같아서 또 다른 곳으로 이직하면 괜찮아질까? 대답은 아니올시다. 왜냐하면 회사가 문제가 아니라 나와 회사라는 곳 자체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나의 피 같은 청춘은 계속해서 소진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벗어나서 나만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이는 전혀 의도적이지 않으며, 특히 출근 준비할 때와 회사라는 공간 안에 있을 때 더욱 간절해진다. 나는 내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적절한 때를 간절히 기다리며. 그리고 매일 다짐한다. 더욱 간절해지기로. 그리고 행동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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