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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Oct 22. 2021

아이보다 못난 아빠

 나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감싸 안았다. 따뜻한 체온과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조금씩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심장박동도 약해졌다. 이상하게 내가 안아 주었음에도 아이의 품에 내가 안긴 것 같았다. 포옹 속에 ‘아빠, 괜찮아’라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오후 햇살이 강했다. 어제 만난 화난 고객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며 서 있었다. .


 “아빠, 빨간 불이야. 멈춰야지. 아빠는 무슨 생각해?”

 “아니야,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그래.”


 여섯 살 난 큰아이와 나는 친구 결혼식에 가고 있었다. 아이 손을 잡고 건널목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작은 소쿠리를 들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보였다. 머리에 깊게 눌러쓴 모자 밑으로 하얀색 머리카락이 지저분하게 삐져나왔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불편해 보였다. 작은 소쿠리는 동냥 그릇이었다. 할아버지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동냥 그릇을 흔들었는데, 대부분 사람은 외면한 채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아무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이는 누군가에게 동냥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이는 나의 손을 흔들면서 물었다.


 “아빠, 할아버지가 그릇을 들고 뭐 하는 거야?”

 나는 어떻게 이야기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돈을 벌기 힘들어서,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냥 지나가는 거야. 돈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면 되잖아.”

 “저런 사람에게 돈을 주기만 하면, 스스로 살아가지 않고, 계속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저렇게 구걸을 하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야.”

 “그래도 불쌍하잖아.”


 신호등이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아이 손을 붙잡고 걸었다. 되도록 할아버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할아버지가 있는 쪽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몇 번이고 아이 손을 다시 붙잡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면서 건너편에 도착할 때쯤, 아이는 잡고 있던 손을 놓더니 할아버지에게 뛰어갔다.


“어디 가니?”라고 소리쳤지만, 아이는 듣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동냥 그릇에 동전을 넣어주러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동냥 그릇을 덥석 쥐고는, 나에게로 뛰어왔다. 사람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고, 창피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는 큰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빠, 할아버지가 불쌍하잖아!”

 아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속에는 축의금 때문에 은행에서 찾은 만 원권이 있었다. 한 장을 꺼내 동냥 그릇에 넣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아이는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아이는 다시 할아버지에게 뛰어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이는 돌부리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동전은 바닥에 쏟아졌고 여기저기 동전 굴러가는 소리가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나는 울고 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었다. 동전을 집으면서 혼잣말로 ‘못난 놈, 못난 놈’하고 중얼거렸다. 처음엔 아이에 대한 원망이었지만, 조금씩 나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왜 진작 아이의 마음을 몰라주었을까? 왜 내 생각만 했을까?'


 조금만 더 아이의 처지에서 생각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벌로 이렇게 땅에 떨어진 동전을 줍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동냥 그릇을 다시 할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그제야 할아버지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만약 내가 아이의 마음을 일찍 공감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는 지난번 고객 방문을 다시 떠올렸다. 고객을 만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고객 마음을 저울질했다.


 ‘나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이득이 있을지 없을지’ 계산만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고객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건널목을 건너면서 할아버지를 저울질하던 나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감싸 안았다. 따뜻한 체온과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조금씩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심장박동도 약해졌다. 이상하게 내가 안아 주었음에도 아이의 품에 내가 안긴 것 같았다. 포옹 속에 ‘아빠, 괜찮아’라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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