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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May 03. 2021

강물 따라 굽이도는 무주 옛길

杏仁의 길 담화_벼룻길 구간

금강변 따라 이어진 무주의 옛길을 걸으면, 물줄기를 따라 금강 상류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산골 정취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길은 부남면에서 서면마을까지 모두 19km를 이어놓았다. 중간중간에 아스팔트 도로를 밟아야 하지만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도로에 보행자 안전을 지켜달라는 마실길 표시를 해 놓아서 길을 걷는 사람들이 비교적 편안하게 시골길을 걸을 수 있다. 벼룻길(1.5km)과 잠두길(3.2km), 무주읍 내도리의 학교길(3.5km)이 나 있다.
 

 벼룻길 구간은 부남면 소재지인 대소리부터 율소 마을까지, 조항산(799m) 자락 강변을 따라 걷는 좁은 바윗길이다. 천문대가 있는 부남면 주민센터에서 강변 목책 길을 지나 굽은 강줄기를 보며 걷는다. 벼룻길 초입은, 나무가 우거져 고개 숙여 조심조심 들어서야 한다.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대롱대롱 붙어 있는 듯한 길이, 좁고 위태로워 보인다. 바닥에 뾰족한 바위 조각들이 밟히는 너덜겅을 달랑달랑 걷는다.  벼랑 아래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연둣빛 산자락이 비쳐 어른거린다. 푸른 강물에 비친 풍경을 보느라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벼룻길이 끝나기 전에 강 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각시바위가 있다. 이곳 전설에 구박받던 며느리가 돌로 변했다고도 하고, 옷을 잃어버린 선녀가 바위로 굳어버렸다고도 한다.

 깎아지른 바위에, 허리를 굽히고 통과해야 하는 작은 동굴이 있다. 자연 동굴이 아니라 사람 손으로 뚫은 구멍이다. 발아래로 강물이 넘실거리고 위로는 바위가 길을 막고 섰는데, 그 바위를 뚫어 길을 냈다. 사람들이 왕래하기 위해 직접 주민들이 통로를 만든 동굴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굴암리에 물을 끌어대는 농수로를 건설하던 흔적이라고 한다. 부역 나온 주민들이 오로지 정과 망치로 거대한 바위에 10m가 넘는 동굴을 뚫었단다. 하지만 억지로 만들려던 수로는 실패로 끝났고 어렵사리 뚫은 동굴은 사람들이 산나물 뜯으러 가는 지름길이 됐다. 이런 사연 때문에 무주 사람들은 이 길을 ‘보뚝길’이라 부른단다.    옛사람들은 이 길을 벼룻길, 모랭이길이라 불렀다. 두메산골의 산꾼들이 약초 며 산나물을 캐다가 이 길을 따라 금산장, 무주장으로 팔러 다녔다.    

벼룻길 각시바위에는 허리를 숙여야 지날 수 있는 작은 굴이 나 있다. 부역 나온 주민들이 정과 망치로 뚫어냈다.


 굽은 강줄기 저편 넓은 언덕에 강마을 하나가 보인다. 벼룻길이 끝나는 율소 마을이다. 각시바위를 빠져나와 율소 마을부터는 아스팔트 길이다. 하굴암과 상굴암, 굴암교와 굴암삼거리를 거쳐야 비로소 잠두마을 강변 숲길을 만난다. 잠두마을은 행정구역상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 부남에서 강을 건너와 무주로 나가는 길목이다.

 잠두길은 옛날에 터덜터덜 완행버스가 달리던 좁은 신작로 길이다. 무주 부남과 금산을 잇는 이 길은, 1970년대 잠두교가 놓이고 국도가 생기면서 잊혀 갔지만 그 덕에 1960년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국도는 다리를 타고 강을 두 차례 건너지만, 원래 옛길은 강을 건너지 않고 강 북쪽 산비탈을 따라 이어져 있다.

 금강의 물줄기는 툭 튀어나온 듯 구부러져 흐르는 형상이다. 물의 흐름이 완만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래프팅을 즐기는 구간이기도 하다.  잠두길 끝인 잠두2교 아래 건너편 강변에는 고무보트가 쌓여있다. 금강래프팅의 종착점이다. 잠두 삼거리 아래에서 출발하는 래프팅은 잠두길을 따라 넘실거리다 여기서 끝난다.

 잠두길 초입을 들어서면 온통 벚나무다. 봄이면 흐드러진 벚나무 터널이 장관이다. 갈선 산(480m) 허리를 에둘러 걷는 길은 서넛이 나란히 걷기에 충분하다. 물줄기는 뱀처럼 구부러져 소리 없이 흐르고 자갈이 깔린 흙길은 비단처럼 펼쳐져 있다.  

 강 아래에 옛 잠두교, 그 위 공중으로 잠두2교와 고속도로가 지난다. 옛 잠두교는 강물 위에 겨우 고개를 내민 작은 시멘트 다리지만 새 길이 나기 전에는 잠두마을에서 무주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벽지 무주에서도 첩첩이 산과 물로 가로막힌 금강 상류는 오랫동안 오지 신세를 벗지 못했다. 금강 물길을 따라 오지 작은 마을들이 곶감처럼 꿰어져 있었다. 잠두마을도 그중 하나다. 잠두(蠶頭)는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학교길은 후도교에서 향로봉을 지나 무주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옛날 까까머리 학생들이 강변의 벼랑과 산을 넘어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무주읍으로 들어가서 내도리에 닿으면 후도교를 건너 시작되는 학교길은, 내도리 뒷섬 마을에서 읍내로 나가는 외길이었다.  

 내도리의 앞섬과 뒷섬 마을은 섬 아닌 섬이다. 금강을 건너는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배를 타야만 읍내에 갈 수 있었다. 앞 섬마을은 배를 한 번 타면 됐지만, 뒷섬 마을은 배를 두 번 타야 했다. 읍내에서 먼저 닿는 마을이 앞섬, 뒤에 닿는 마을이 뒷섬이었다. 비가 많이 내려 강물이 불어나고 거칠게 흐르면 그나마 배를 띄울 수도 없었다. 차라리 깎아지른 벼랑길을 따라 향로봉 낮은 목을 넘어가는 게 나았다. 뒷섬 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이 험한 산길이 오늘날 '학교길'이라는 이름의 마실길이다.

 후도교를 건너면 벼랑을 따라 고요한 강변길이 이어진다. 억센 풀숲 사이로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바위가 앞을 막는다. 질마바위다. 구렁이가 담을 넘듯 길은 바위 위를 타고 넘어간다. 일제강점기 무렵 주민들이 바위를 일일이 정으로 쪼아 길을 만들어냈다. 벼룻길 각시바위에는 동굴을 만들었다면, 질마바위에는 동굴 대신 바위를 넘는 길을 냈다.  

 학교길 언저리에, 조선 초 무학대사가 무주의 지세를 보완하기 위해 세웠다는 북고사가 있다.. 절 앞을 지나면 향로봉에 올라서서 능선을 넘어간다. 솔향기 그윽한 산길을 거슬러 올라 향로봉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금강 물길은 창암절벽을 감아 도는 절경이 안동의 하회 못지않다. 장엄한 덕유산 줄기 아래 적상산이 우뚝 서 있고 그 아래 무주 읍내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골짜기를 끼고도는 내도리 물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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