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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항재 Feb 06. 2020

백신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마음의 바이러스

2020년 2월 3일, 오늘.


어제는 2020년 2월 2일이었다. 

20200202, 앞에서부터 읽어도, 뒤에서부터 읽어도 똑같은 숫자가 배열되어 있는 1000년에 한 번 있는 그런 날이라고 위챗(중국에서 가장 User수가 많은 SNS 플랫폼) 내의 중국인들이 너도나도 글을 올린다.

그런데, 아무리 이런 1000년 만의 사건도, 조코비치의 8번째 테니스 호주오픈 우승 소식도 현재 중국에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태에 비하면 뉴스거리가 안된다. 


오늘은 원래 계획대로 였다면 춘절 이후 첫 출근일이었다. 보통 중국에서는 춘절 연휴가 지나고 출근하는 첫날을 '开工' (일을 시작한다 는 의미)이라고 하여 老板(라오반, 보통 기업의 사장, 또는 조직의 '장'을 의미)이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红包(홍바오, 붉은 봉투라는 뜻인데, 보통 포상금 또는 축의금을 의미)를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다. 현재 회사에서도 미리 홍바오를 준비해서 나누어 줄 준비를 했었다. 

아마 다음 주 2월 10일에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이 사태가 더 악화되면 한 주 더 출근일이 연기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글을 올리고 있는 지금, 이미 다시 출근 1주일 연기하기로 결정되었다.)


출근은 안 했지만 바쁘게 위챗으로 톡하며 회의에 회의가 진행되었다. 

카톡처럼 위챗도 여러 대화방을 만들고 다수의 사람들과 채팅을 할 수 있다. 기업용 위챗에서는 한 번에 최대 300명까지도 화상 또는 전화회의가 가능하다고 한다.(일반 위챗은 9명이 최대)

그룹 전체 주요 HR 매니저들 대화방을 시작으로, 사업부 책임자들만 들어가 있는 고위층 대화방, 그리고 좀 더 보안을 요하는 긴밀한 대화는 개인톡으로,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갔다.


단연, 관심은 비상경영 대책이다. 

예상대로 현재 중국 경제 상황은 이 바이러스 사태만큼이나 심각하다. 

오프라인은 누구라 할 곳 없이 모두 초주검이다.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온라인, 이커머스도 지금은 꿈쩍도 안 한다. 그냥 모든 게 다 정지다. 얼어붙었다. 

중국 뉴스에서는 지난 1월 말부터 현재까지 7일간 중국 외식업계의 누적 손실이 무려 5000억 런민비(한화 약 84조억 원)이라고 보도했다. 하이디라오(海底捞)라고 하는 허궈어 음식점 한 곳에서만 5-7억(한화 1000억) 손실이 났다고 한다.


정책, 시스템, 마케팅...아니다. 소비자, 사람들의 마음이 꽁꽁 얼었다. 

외식업, 서비스업만이 아니라 전업종, 거의 모든 브랜드가 다 비상이다. 몇몇 중국 회사들과 소통해 보니, 모두 6개월 생존계획을 이야기한다. 좀 작은 곳은 12개월까지 보고 있다. 매출'0', 영업 입금 '0'의 현금흐룸 속에서는 다른 조치는 소용이 없다. 자르고, 취소하고, 줄이고, 없애야 한다. 


오늘 종일 회의도 그런 차원에서 대책이었다. 

동시에 다음 주 본격적인 사무실 오픈을 대비한 프로토콜, 가이드라인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이미 일부 대기업들은 상세하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다. 

정부에서도 별도로 위생관리에 대한 엄격한 지침이 공표된 상황이다. 

한국 메르스 때와 마찬가지로 사업장, 사무실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그 장소는 모두 폐쇄당한다. 동일한 공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검진받고 감염 안되어도 14일간 집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만약 의심 환자면 별도 장소로 격리되어 일절의 접촉을 제지당한다. 

우한 정부의 초동 조치 실패에 대해 중앙 정부의 강력한 제재, 처벌을 예고하고 있어서인지 정부기관들은 무척 민감한 상황이다. 모든 사무실은 굳게 닫고 들어갈 수도 없게 통제한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모든 기업들이 긴장상태다. 혹시라도 직원들 중에 감염자가 나오면 업무에 큰 지장을 받기에 조심에, 조심을 기한다. 아예 사무실로 안 나오는 정책을 쓰고 있다. 

만약 출근을 해야 한다면 아래의 가이드를 준수해야 한다. 


1. 37.3도 이상 열이 나면 절대 출근 금지

2. 사무실 안에서도, 회의하면서도 마스크를 상시 써야 함

3. 서류나 물건을 만질 때마다 손을 소독해야 하고, 환기 자주 시켜야 함

4. 출퇴근 시 사람들과 1미터 떨어져야 함

5. 점심도 여러 사람이 같이 먹지 말 것. 식당에서도 가능하면 혼자 앉을 것. 가능하면 도시락을 싸서 올 것

6. 엘리베이터 이용하지 말고 계단을 이용할 것

7. 손세정제, 마스크 구비 안되면 사무실 오픈 불가(건물 관리소에서 모든 층 입주 회사들에 대해 요구 중)

8. 출퇴근 시 공공교통은 가능하면 이용하지 말 것, 자전거나 개인 자가용을 이용할 것


이 정도면 그냥 집에서 근무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현재 보통 사람들이 마스크를 구매할 방법이 없다. 온라인 판매도 거의 없고 혹시 주문해도 현재 물류가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아서 받으려면 2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서 출근을 시작하는 순간 바이러스 자체를 피해 다니기는 힘들 것 같다.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만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우리 마음에 싹튼 불안, 공포감, 스트레스가 더 큰 해악이다. 

이 공포감은 사람들을 준감염자, 예비 확진자로 보며 피하고, 멀리하게 만든다. 

특정지역 출신자들을 배척하고 경멸하고 비난하게 한다. 그들이 당한 어려움보다는 그들 때문에 내가 겪게 되는 불편함이 더 큰 불만이고 관심사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내 가족, 나만 안전하면 된다는 이기심도 증폭시킨다. 

문제는 이 바이러스는 마스크, 손세정제로는 씻을 수도 막을 수도 없다. 


문득, 몇 년 전 여기 브런치에서 읽었던 글이 떠 올랐다.

 https://brunch.co.kr/@unitasbrand/214


구레네 사람, 시몬과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연결하여 하나의 영화 같은 스토리로 풀어낸, 

글로 인상이 깊었던 글이다.

여기서 소개된 예수님의 '사마리아인' 비유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나왔던 것이다.

어느 날 어떤 한 사람이 예수께 찾아와 물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질문하셨다. "하나님의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렇게 해라, 네가 살 것이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그때 예수께서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말씀하셨다.

강도를 만난 유대인을 구하고 돌본 사람은 권력과 지식, 부를 갖춘 그의 동족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평소 그렇게 멸시하고 무시하던 사마리아인이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관계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평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에 대해 차별하고 무시하고 가까이하면 부정해진다고 마치 들짐승을 보듯 멀리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의 비유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하고 돌본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너는 누구를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라 하겠는가?"

"친절을 베푼 사람입니다."

"너도 가서 똑같이 하라"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어떻게 얻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예수께서는 정확한 답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도전하신다.

"너는 너의 생명을 위해 율법을, 도덕적, 종교적 기준을 자격을 묻는가? 나는 너에게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춘, 너의 선택이 아니라 지금 네 눈앞에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가 바로 너의 이웃이고, 네 사랑의 대상이다." 


지금 세상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수 언론이 현재의 바이러스 상황을 놓고 누구 탓인지, 뭘 잘못했는지 분석도 많고 비판도 많다. 실시간으로 환자와 사망자 수를 공유하고 확진자의 동선, 이동경로를 추적하여 공유한다. 숫자로 표시되는 사망자수, 환자수는 마치 속도계의 숫자처럼 보이고, 어제보다 10명 사망자 수가 줄어 60명이 죽었음을 환영하는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한국에서도 중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고, 중국 내에서도 우한 출신자들을 바라보는 눈초리도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도 중국인, 더 나아가 동양인을 싸잡아 차별하고 비하하는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축구스타 손흥민이 인터뷰 중에 기침했다고 바이러스 이야기가 댓글에 실시간으로 달린다.

동양인이 마스크를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기침소리를 내면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본다고 한다.


의심환자로 '바이러스'취급당하고, 감염으로 확진되어 격리당한고 그 독감, 폐렴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위로는 없다. 중국에서만 이미 5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들의 죽음, 그리고 그 가족들의 슬픔을 애도하거나 위로하는 분위기는 없다. 직장이 폐쇄되고, 일거리가 없어서 당장 생활고를 겪게 되는 사람들, 회사의 존망을 논하는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속이 타들어가는 기업인들을 알아주는 사람이나 위로의 한마디도 찾기 힘들다. 다들 자신의 안전, 건강이 최고 우선이다. 막아서고 멀리하고 돌아서간다. 마치 강도 만나 피 흘리고 쓰러진 사람을 보았던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다.


바이러스 때문이다. 

변종 코로나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우리를 병들게 한다.

이 바이러스를 퇴치할 유일한 백신은 '사랑' 뿐이다.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예수께서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하며 요구하셨던 그 '사랑'만이 우리를 치유할 것이다. 


"너의 이웃은 누구인가? 너는 그를 네 몸같이 사랑했는가?"라는 예수의 질문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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