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비늘을 가진 무지개 물고기다
동화 <무지개 물고기>의 주인공은 다양한 색의 비늘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특별히 은빛으로 반짝이는 비늘이 있어서일까. 제 외모에 흠뻑 취해있다. 주변 물고기들은 무지개 물고기를 부러워하고, 비늘 하나만 달라고 한다.
아이들이 클 때 종종 읽어주었던 동화다. 겸손을 배우라는 의미로 처음엔 읽었다. 자신에게 있는 장점을 너무 내세우면 주변 사람들이 싫어하니 그러지 말아라, 라는 의미였던가. 적어도 나는 어려서 그렇게 자랐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렇게만 키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포장하고 내세우는 요즘의 시대에는 나를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겸손하다 못해 너무 양보만 하는 첫째를 보며 엄마 역할을 잘못한 건 아닌가 반성하기도 했다.
그래서 둘째는 자기의 주장을 어느 정도 내세울 수 있도록 키웠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은 악착같이 하고, 왜 그런지 논리적으로 대꾸한다. 주변의 사람을 살피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도 어느 틈엔가, 자신에게 이익이 없는데 왜 해야 하는지 되려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지금 자신의 상황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니 타인에 대해 배려할 틈이 없다. 올바로 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건가.
막내는 딸이어서 그런가 공감 능력이 아들보다 좋았다. 남녀 차별할 생각은 없으나 성향이 그렇다는 얘기다. 셋째라 눈치도 빠르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나갔다. 굳이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제 일은 제가 하겠다며 더 나섰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은 뚜렷했다. 남녀 구분인지, 셋째의 차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래로 갈수록 자신의 존재에 대해 파악하는 일은 확실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기의 비늘 색깔이 어떻든 각자가 무지개 물고기였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영어, 수학을 공부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고집을 부리지 않아서였을까. 이름있는 대학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다가도 원하는 일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를 다독인다. 나는 그래도 잘, 하고 있었다.
자존감 수업을 어디선가 본 적 있다. 자신의 자존감을 올려줄 때 양손으로 반대쪽 어깨들을 토닥이며 “나는 잘하고 있어.”라고 말한다. 포옹하는 듯한 양팔의 느낌이 포근하고 따스하다. 그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이 한결 가득 차는 느낌이 든다. 그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사이에 자존감은 충전된다. 엄마가 되면서 갈대처럼 마음이 이리저리 휘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그때마다 나의 자존감을 툭툭 달래주면서 엄마로서의 길을 묵묵히 참아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엄마에게도 특별한 비늘이 생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