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색이면 되었다
분홍색은 영어와 우리말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분홍이라고 하면 뭔가 옛날 향에 정감있게 들린다. 핑크는 우리가 느끼는 분홍보다 더욱 진하고 채도가 높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핑크는 젊은 세대의 느낌이 나고 분홍은 전통스런 멋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 차이가 있다고 해도 분홍의 맛을 아는 여자들이라면 요즘 유행하는 ‘에겐녀(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풍부해 감성적이고 섬세한 여자)’의 중심에 핑크가 있지 않은가.
유년 시절에는 분홍색 옷을 입어보고 싶었다. 분명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당시에는 주어진 옷대로 입어야 하는 그 시절에 분홍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절대 가질 수 없는 그곳으로 가고 싶을 뿐, 가지 못하는 유토피아와 닮은 색이었다. 당시 여자들의 만화는 핑크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남자는 핑크’라며 중세 시대의 상황을 외쳐도 여자들의 분홍은 어쩔 수 없었다. 남녀 차별이라는 당시 시대에서는 그럴만 했다. 요즘이야 남자나 여자나 좋아하는 색을 입는 걸 뭐라 하겠는가.
나에게 딸이 생기면서 나의 채우지 못한 마음을 가득 담았다. 분홍색이 어울리는 때가 있지 않은가. 아들 둘 밑으로 딸이 생겼으니, 얼마나 딸인 걸 알리고 싶었을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당시에는 머리카락이 짧아 다들 아들이냐고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는 사람들 때문에 분홍 머리띠와 분홍내복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누가 봐도 딸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딸을 핑크 공주로 만들려고 더 애를 썼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딸은 핑크를 버렸다. 나의 로망을 딸에게 투영시킨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지 않았을까. 강요하는 말은 없었으나 너무 자주 입히는 통해 반발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딸은 검은색 위주로 옷을 입었다. 초등학생인 6년 내내 검고 칙칙한 옷을 입다가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는 그래도 나름 색감과 조화를 생각하며 입는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저 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에 내가 다가간다. 톤 다운된 분홍색 티셔츠를 산다. 분홍 봄 점퍼를 산다. 인디핑크 바지를 산다. 핑크색 모자를 산다. 그만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