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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유 아빠 Aug 17. 2022

잔상 3

어떤 남자와 흔적들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있었다. 뚜렷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잔상이 주는 감각은 분명히 그녀가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 19년 전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던 나를 다시 현실로 돌려보내 주었다. 그녀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에게 나는 아마 19년 전 갑자기 사라진 사람일 수도 있고, 지금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잊힌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가 알게 된 것은 1996년이었고, 친하게 지낸 것은 1998년이었으며, 교재 한 것은 1999년, 반년 남짓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보지 않은 기간은 19년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작별인사나 어떤 종류의 인사도 남기지 못했다. 일은 정말 너무 갑자기 일어났고, 나중에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천에서 출발한 배는 밤새도록 제주를 향했고, 사실 딱히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난 후에는 그녀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녀 앞에 갑자기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녀는 나를 알아볼 수 조차 없을 수도 있었다. 아니, 그녀는 나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를 알게 될 당시 나는 아주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머리는 늘 교칙에 맞게 3cm를 유지하고 있었고 밤낮없이 친구들과 돌아다닌 덕에 피부는 계절과 관계없이 늘 검게 그을려 있었다. 몹시 말라 신경질 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제로 신경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이 서툴고 부담스러웠을 뿐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원하는 바가 없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은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런 나의 눈에 그녀는 미지의 생물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삼 년 내내 도서부였다. 사실 문예부를 가장한 도서부였는데,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목적으로 동아리에 가입해 있었다. 아이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도서관에 모여 읽은 책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새 아이들이 영상의 내용을 공유하는 것처럼, 그런 시대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책을 읽었다. 사실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고, 동아리의 아이들은 더 열심히 독서를 했다. 나는 사실 독서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을 관리하는 데 보냈다. 새로 들어온 책의 이름과 저자를 적고 대출증을 관리하고 책을 서가에 정리해 넣었다. 내가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모두 꺼려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일은 온통 나에게 맡겨졌고, 나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일을 맡았다. 혼자 서가에 서서 책을 정리하고 책을 대출해주는 그 일이 좋았다.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지도 못하는 일이었지만 대출 창구에 들어온 대출신청서를 받아 책을 빌려주고 반납을 받는, 고작 그런 일이었지만 나는 혼자 그 일을 할 때가 마음이 가장 편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고, 그냥 괜찮은 친구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나와 달랐다. 대출 창구의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그녀는 늘 다른 누군가와 어울려 있었다. 그녀는 늘 중심이었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그녀는 잘 웃었고, 잘 웃어주었다. 거의 말이 없는 나에게도 몇 번이나 웃어줄 정도였다. 나는 그녀를 동경하지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미지의 생물이었다. 늘 많은 말을 하고 많이 웃는, 늘 빠른 걸음으로 다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녀는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이었다.


아침에 학교는 조금 이상한 에너지가 흐르는 곳이 된다. 학창 시절 학교는 나에게 큰 의미를 주지는 못했다. 습관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향하는 곳이었다. 딱히 큰 꿈과 희망을 주는 곳은 아니었지만, 학교는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머물러 있었다. 교실에는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가득 차 있었고, 포화상태의 아이들이 충돌하거나 갈등하거나 하는 일 까지도 나에게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처럼 느껴졌다. 때때로 이루어지는 체벌이나 아이들과의 관계 맺음도 그랬다. 우리는 그냥 거기 머물고 있을 뿐, 무용담처럼 남을 비행도 갈등도 사실 많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예전의 학교에 비해 훨씬 역동적이다. 아이들은 온갖 표정을 하며 등교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아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교사나 누구를 보아도 자신의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온전히 감정을 드러내고 인정받는다. 온전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으로 인사해도 선생님 누구 하나 아이를 책망하지 않는다. 아이의 안부를 묻고, 가족의 안부를 묻고, 이성친구와 잘 지내는지, 다른 이성친구가 생겼는지 묻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온전히 자신의 언어로 답한다. 사실 그런 언어는 외부의 시선이나 성인의 시선에서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서로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아니 정확하게는 나의 장애를 발견하면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보지 않는 것처럼 나의 불편한 팔과 흉터를 보곤 한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닌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내가 출근하는 날부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 얼굴을 가리키며 아프지 않냐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한두 주가 지나자 아이들은 나를 보고 인사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끔 행정실에 찾아오는 학생들도 나를 응시해주었다. 그리고 그게 나를 치료해주었다. 말이 많아지거나 잘 웃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그랬다. 학교는 온갖 소음이 발생하는 공간이었다. 행정실에 앉아 있으면 온갖 알림 소리,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웃는 소리, 혼내거나 함께 웃는 소리, 노랫소리가 온 천지에 울린다. 그리고 그 울림 속에서 나는 하루를 보낸다. 결재를 올리고, 결재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 조금 이야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회식을 거절하고 학교 창문과 문을 점검하면,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저녁을 조금 만들어 먹고,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다가 잠든다. 하지만 그날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장고를 열어 달걀을 두 개 꺼냈다. 그리고 급히 밥과 함께 삼키고 그녀를 찾아 나섰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초여름, 막 장마가 시작되려는, 온통 습한 제주도의 마을을 골반과 다리가 저릴 때까지 걸어 다녔다.
오지원. 그녀는 분명히 있었다. 오늘 지금 이 근처에.


아침에 학교는 조금 이상한 에너지가 흐르는 곳이 된다. 학창 시절 학교는 나에게 큰 의미를 주지는 못했다. 습관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향하는 곳이었다. 딱히 큰 꿈과 희망을 주는 곳은 아니었지만, 학교는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머물러 있었다. 교실에는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가득 차 있었고, 포화상태의 아이들이 충돌하거나 갈등하거나 하는 일 까지도 나에게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처럼 느껴졌다. 때때로 이루어지는 체벌이나 아이들과의 관계 맺음도 그랬다. 우리는 그냥 거기 머물고 있을 뿐, 무용담처럼 남을 비행도 갈등도 사실 많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예전의 학교에 비해 훨씬 역동적이다. 아이들은 온갖 표정을 하며 등교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아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교사나 누구를 보아도 자신의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온전히 감정을 드러내고 인정받는다. 온전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으로 인사해도 선생님 누구 하나 아이를 책망하지 않는다. 아이의 안부를 묻고, 가족의 안부를 묻고, 이성친구와 잘 지내는지, 다른 이성친구가 생겼는지 묻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온전히 자신의 언어로 답한다. 사실 그런 언어는 외부의 시선이나 성인의 시선에서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서로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아니 정확하게는 나의 장애를 발견하면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보지 않는 것처럼 나의 불편한 팔과 흉터를 보곤 한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닌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내가 출근하는 날부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 얼굴을 가리키며 아프지 않냐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한두 주가 지나자 아이들은 나를 보고 인사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끔 행정실에 찾아오는 학생들도 나를 응시해주었다. 그리고 그게 나를 치료해주었다. 말이 많아지거나 잘 웃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그랬다. 학교는 온갖 소음이 발생하는 공간이었다. 행정실에 앉아 있으면 온갖 알림 소리,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웃는 소리, 혼내거나 함께 웃는 소리, 노랫소리가 온 천지에 울린다. 그리고 그 울림 속에서 나는 하루를 보낸다. 결재를 올리고, 결재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 조금 이야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회식을 거절하고 학교 창문과 문을 점검하면,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저녁을 조금 만들어 먹고,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다가 잠든다. 하지만 그날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장고를 열어 달걀을 두 개 꺼냈다. 그리고 급히 밥과 함께 삼키고 그녀를 찾아 나섰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초여름, 막 장마가 시작되려는, 온통 습한 제주도의 마을을 골반과 다리가 저릴 때까지 걸어 다녔다.


그녀는 분명히 있었다. 오늘 지금 이 근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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