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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Jun 26. 2024

달팽이

아침 산책길에 달팽이가 많이들 나와 있었다.

언제 비가 왔나 하며 달팽이를 피해 걸었는데 잘못해서 하나를 밟고 말았다. 

완전히 납작하게 밟기 전에 놀라 발을 들었지만 물론 달팽이는 깨져 죽고 말았다.


개미가 꼬이겠군... 신발에 달팽이가 묻었겠군 신발 바닥이지만. 생명을 죽였네. 달팽이는 고소하는 일은 없지

등의 생각이 찰나처럼 지나가고 두 걸음 정도 머뭇거리다 나는 다시 걸었다.



그날 오후 죽은 달팽이의 유족들이 찾아왔다.


흐느적 흐느적 (내 딸을 살려내시오!)

흐느적 흐느적 (그렇게 죽여놓고 그냥 가 버리면 다요!)

흐느적! (달순아!)


하지만... 달팽이는 암수가 없다고 들었는데. 이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당황했다.


그럼 어떻게 해드릴까요. 피해 보상을...?

나는 냉장고 안에 있는 양배추와 오이, 잎채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빨간 파프리카도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서 주고 싶지 않았다.


흐느적 흐느적 흐느적! (진정한 사과가 먼저 아니오!)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내 입술이 튀어나오고 눈이 부릅떠지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비도 온 것 같지 않은데 길에 그렇게들 많이 나와 있으면 어떻게 걸으라는 거야?

피해자의 과실 유무도 따져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 내가 죽여놓고 왜 이런 생각이 들까?

복잡한 생각 끝에 내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 하지만, 나는 프랑스에서, 달팽이를 먹은 적도 있단 말이오!


... 흐느적 흐느적

흐느적?

흐느적...


유족들은 웬일인지 더 말하지 않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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