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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호미 Jul 10. 2024

영화 애프터 양이 말해준 끝의 의미

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때에 대해 써라


10년 전, 나는 유럽 여행을 가고 싶어 1년 동안 돈을 모았다. 그렇게 떠난 유럽에서 한 달간 많은 걸 잃었고 또 얻었다. 나는 당시에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니기보다 한 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영국 런던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다음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8일간 지냈다. 다음 도착지인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떠나기 하루 전, 나는 파리에서 마지막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파리는 내가 가장 불쾌함과 희롱을 많이 경험 도시이자, 오래된 도시가 가진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누린 곳이었다. 하루종일 어떤 사건이 내게 일어났건 간에 높은 곳에 올라가 에펠탑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녹아내리곤 했다. 그날도 나는 에펠탑 근처 벤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이 떨릴 정도로 추운 저녁이었지만, 에펠탑이 서서히 어둠에 잠길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글을 썼다.



내가 죽지 않는 한 내일의 해는 반드시 뜨는 걸 안다

그러나 하루 끝에 내려앉은 노을을 보고 있으면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쓸쓸해졌다

오늘과 내일은 분명 다를 것을 알기에

오늘을 보내기가 아름답고 쓸쓸했다.



노을은 어디서나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고, 파리도 다시 방문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왠지 그날의 노을과 헤어지는 게 힘들었다. 비슷한 계절에 다시 에펠탑 앞으로 온다면 비슷한 색의 노을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노을은 그날로 끝나는 것이니까.




나는 유럽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이후로도,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니며 살았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떠난 곳도 있었고, 이민을 결심하고 떠났던 나라도 있었고, 연고가 전혀 없는 한국의 도시에 살아 본 적도 있다. 나는 그때마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나라들을, 도시들을 떠나야 했고 그건 그 사람들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시간과 돈만 있다면, 언제든지 그들을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겹쳐져 있던 서로의 일상에선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헤어질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내가 사람들과 이별을 경험하며 배운 것은 단지 의연한 태도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는 6개월간 매주 만나며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모임을 그만두었다. 마지막 날, 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게 마지막 소감을 물었다.


나는 '정말 슬프고 우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에게 앞으로 일어나게 될 새로운 일들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고 대답했다. 미리 생각해 둔 말도, 쿨해 보이려고 꾸며낸 말도 아니었다. 그 모임은 내게 정말 소중했지만, 애초에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오지 않았다면 참여할 수 없었을 모임이었다. 부산에서의 삶과 헤어져, 서울에서의 삶을 시작했기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내게 생길 또 다른 새로운 일이 기대가 됐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왓챠에서 '애프터 양'이라는 영화를 봤다. 애플 시리즈 '파친코'의 감독이었던 코고나다의 최신작이라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영화에서 '양'은 중국인의 모습을 한 로봇이다. 그는 주인공 부부가 입양한 중국인 아이의 민족적 뿌리를 잊지 않도록 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로봇이었다. 그는 로봇이지만, 박제된 나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그는 여 주인공의 어느 질문에, 고대 중국의 철학자인 노자의 말을 빌려 나비를 이야기한다.

 


What the caterpillar calls the end, the rest of the world calls a butterfly.

애벌레에겐 끝이지만, 세상에겐 나비의 탄생이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과의 이별을 통해 배운 것은 끝이 진짜 끝은 아니라는 것이다. 파리의 에펠탑과는 끝이었지만, 스위스의 알프스와는 시작이었다. 나라들을 떠났기에 부산이 있었고, 부산을 떠났기에 서울이 있었다. 평생 다신 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과의 끝도 진짜 끝은 아니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의 기억이 여전히 내 안에 머물고 있다. 그 기억들은 끊임없이 흐르며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 때론 내가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때가 있다.


영화 속에서 양은 로봇으로써의 수명을 다하고 가족을 떠난다. 가족은 양의 자리를 새로운 로봇으로 대체하지 않는다. 곁에 없는 양을 추억하며, 그의 빈자리를 감당한다. 그렇게 그들은 나비가 탄생한 일상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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