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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호미 Jul 24. 2024

타인의 도움을 기꺼이 허락하는 용기

타인에게 친절을 베푼 일에 대해 써라



나는 가끔씩 유튜브 알고리즘에 휩쓸려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 말하는 영상들을 본다. 영상 속의 시민들은 자신의 시간과 돈 때론 몸까지 희생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다. 사회 실험 카메라 영상의 시민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지나치지 않고 돕는다. (조작된 영상이라 굳이 의심하진 않는다)


최근에 봤던 어느 영상에선, 한 남자아이가 추운 날씨에 외투도 입지 않은 채 거리에 서 있었다. 사람이 많이 걸어 다니는 거리였지만, 사람들은 아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추위에 떨며 웅크려 누운 아이를 누군가 일으켰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주었고, 주머니에 있던 동전도 꺼내 주었다. 그는 아이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노숙자였다.




나서기 애매한 순간들이 있다. 이를테면 지하철 역내에서 길을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외국인을 봤을 때, 바쁘게 걷다가도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볼까' 고민한다. 하지만 이미 내 걸음은 그를 한참이나 지나쳐버려서 '직원 분이 도와주겠지', '도움이 필요하면 직접 물어보겠지'라고 생각하고 만다. 


아마 실험 카메라의 추운 아이를 지나친 사람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나는 왜 영상 속 시민들처럼 용기 있게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하는지 생각하다, 내게 쌓인 거절의 경험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서울의 서부는 노인 인구의 비율이 꽤 높다. 그래서 지하철 역을 이용하는 노약자의 수에 비해, 엘리베이터 시설이 부족하다. 우리 동네 지하철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길을 건너야 해서, 그냥 계단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가끔 무거운 짐이나 수레를 끌고 한 계단 한 계단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어르신들을 만난다. 그럴 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짐을 들어드리겠다며 먼저 말을 건다. 하지만 열이면 열, 어르신들을 하나 같이 한사코 나의 제안을 거절한다. 


미안해서 그러시나 싶어, 여러 번 물어봐도 소용없다. 짐을 사수하시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내가 너무 힘이 없어 보이나', '내가 짐을 훔쳐 도망갈 것처럼 보이나?'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런 거절의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면 먼저 도움이 필요하냐고 말을 꺼내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어느 날 광주를 놀러 갔다, 같은 호차의 기차에 오르려 줄을 서 계시던 할머니를 만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거운 짐을 가득 들고 계셔서, 나도 모르게 손부터 나가버렸다. 대신 들어드리겠다는 내 말에 할머니는 웃음으로 화답하며 '그럼 신세 좀 질게요'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원하는 위치까지 짐을 들어드린 후, 나는 내 좌석으로 향했다. 나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 순간 평소보다 10%는 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도움을 받은 건 할머니인데, 어쩐지 내가 더 이득을 본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어려워한다기보다 귀찮아하는 편이다. 길을 걷다 방향이 헷갈리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보다 휴대폰을 꺼내 길 찾기 어플을 열게 된다.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세우는 건, 마음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내 인생에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게다가 보통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약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먼저 도움을 구하는 건 내가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경우엔 반대로 자신이 도움을 주는 입장일 때, 스스로 강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다. 내가 그랬다. (도움을 주는 위치와 역할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건 첫째의 고질병이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준 사람 모두 같은 에너지를 교환한다. 그러니까 도움을 주는 사람도 무언갈 얻는다는 것이다. 도움을 구했던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했던 것을 실질적으로 얻어내는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도울 기회를 제공한 사람이 된다. 반면에 도움을 준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돈 등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내어주는 동시에 타인을 도왔다는 긍정적 감각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사실 도움을 타인에게 청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도와줄까 하고 물어오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나는 지금 도움이 필요하다고 대답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기를 낸다면,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다면 덕분에 다른 사람의 하루가 행복해질 지도 모른다. 광주역에서의 할머니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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