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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아름다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by 이시영

149. 아름다움이라는 느린 화살 - 가장 고귀한 종류의 아름다움은 갑자기 매혹시키는 그런 아름다움이나, 폭풍처럼 도취시키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이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 꿈속에서 한 번 만난 듯 우리들 마음속에 겸손히 자리 잡은 후 결국 우리를 점령하여 우리의 눈을 눈물로, 우리의 마음을 동경으로 채우면서 천천히 스며드는 아름다움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책세상, 2019. p.170)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보통은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모습이나 갑자기 마음이 들뜨는 순간들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눈부신 보석의 반짝임, 밤하늘을 환하게 수놓는 불꽃놀이의 화려함, 첫눈에 반하는 뜨거운 사랑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아름다움은 마치 번개처럼 짧은 순간에 우리 시선을 붙잡고 강한 기쁨을 주지만,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거나 익숙해지면서 희미해지기 쉽다. 고귀한 아름다움은 갑자기 마음을 빼앗거나 폭풍처럼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우리 마음에 오래 머물고, 꿈속에서 한 번 본 것처럼 천천히 스며들어 우리의 눈을 눈물로, 마음을 그리움으로 가득 채우는 아름다움이다. 니체는 그것을 '느린 화살' 같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느린 아름다움'은 많다. 매일 아침 떠오르는 해,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나무, 계절마다 다르게 펼쳐지는 하늘의 색깔,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 은은하게 퍼지는 꽃 향기 등이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느낌일지라도, 시간이 쌓이면서 우리 기억 속에 소중한 순간으로 자리 잡고, 문득 떠올랐을 때 잔잔한 미소와 함께 깊은 평안함을 선물한다. 이런 아름다움은 아주 천천히 우리 마음에 자리 잡는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느린 아름다움'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처음 만난 사람의 화려한 겉모습이나 말솜씨는 우리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 따뜻한 배려, 깊이 있는 생각, 변함없는 성실함 같은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겉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아름다움은 쉽게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힘들 때 건네받은 따뜻한 위로,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함께 해 온 친구의 변함없는 믿음,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 안으며 성장해 온 연인의 깊은 사랑은 처음에는 그 소중함을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깊이와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결국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이런 아름다움은 한 번에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서서히 느껴지고 쌓이는 것이다.


당신의 삶 속에는 어떤 '느린 아름다움'들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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