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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있는 책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by 이시영

208.

책은 거의 사람이 되었다 - 책도 그러하지만, 모든 저술가도 책이 자신에게 분리될 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에 놀란다 ; 그것은 마치 곤충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서 그 일부분이 자신의 길을 계속 나아가는 듯한 느낌과 흡사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미기 옮김, 2019. p.203)


글쓰기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작가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생각과 감정을 언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엮어 세상에 드러낸다. 이 과정은 마치 화가가 붓으로 색을 입히고 조각가가 돌덩이를 깎아 형상을 만들어내듯, 작가의 혼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 창조물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발생한다. 마치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녀처럼, 저작물은 독자라는 새로운 관계 속으로 진입하며 작가로부터 분리된 고유한 존재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글은 더 이상 그의 머릿속에 머무르는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독자의 손을 거쳐 읽히고 해석되는 과정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가 된다. 독자들은 자신의 지식, 경험, 가치관이라는 각기 다른 필터를 통해 작가의 글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며,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는 저작물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독자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음을 시사한다.


어떤 글들은 우리의 내면을 정면으로 비추는 거울처럼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때로는 날카로운 통찰로 우리의 익숙한 생각들을 흔들고,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단점이나 잘못된 가치관을 마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순간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마치 꽁꽁 닫아두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그 안에 담긴 어두운 감정들과 마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의 시야는 넓어지고 내면은 단단해진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발전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때때로 100년도 더 전에 쓰인 어떤 철학자의 저작물들이 지금 내 삶에 깊이 녹아들어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지금의 과정을 경험한다. 그 오래된 글들이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내게 말을 걸고, 나의 단상들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나와 소통하는 하나의 '거의 사람'이 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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