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210.
은근한 풍요로움-타고난 정신의 귀족들은 지나치게 서두르지 않는다 ; 그들의 창조물들은 지나치게 갈망되고 요구되거나 새로운 것에게 쫓기는 일 없이 모습을 드러내어 어느 조용한 가을 저녁에 나무에서 떨어진다. 끊임없는 창작욕은 저급한 것으로, 경쟁심, 시기, 공명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그 무엇을 가진 존재라면, 그는 원래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히 많은 일을 한다. ‘생산적인’ 인간들 위에는 아직 더 높은 종류의 인간이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2019. p.204)
나는 가끔 눈앞의 성과에 매몰되어 조급함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치 씨앗을 심자마자 꽃이 피어나기를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빠른 결과를 갈망하며 현재의 노력보다는 미래의 결실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살펴보면, 모든 것은 저마다의 속도로, 정해진 때에 그 결실을 맺는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은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위한 거름이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고 경쟁하라는 사회적 압력에 직면한다. 누가 더 빨리 성공하는지, 누가 더 많은 성과를 내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 주변을 끊임없이 맴돈다. 이러한 경쟁 구도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만의 고유한 속도를 잃어버리고, 남들이 만들어낸 기준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려 애쓰게 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하고 생산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경쟁심, 시기, 공명심 같은 것들은 어쩌면 낮은 수준의 욕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외부의 인정이나 성과에 얽매여 자신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기계'로 전락시키는 현대인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은 외부의 강요나 비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을 극복하고, 내면의 힘을 발현하는 '권력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조급함과 불안감에 휩싸여 억지로 만들어낸 결과물은 쉽게 시들고 그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다. 마치 급하게 지은 집이 쉬이 무너지듯, 서두른 창작물은 그 생명력이 짧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내면에서 숙성된 가치는 깊고 풍부한 향기를 지니며,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나는 그것이 삶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성과만을 쫓는 삶 너머에, 내면의 충만함과 자연스러운 발현을 추구하는 더 높은 차원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풍요로움은 강요되거나 쫓겨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존중하고, 내면의 가치에 집중하며, 성급한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선물이다. 우리의 삶이 한 조용한 가을 저녁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자연스럽고 은근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