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44. 잘 보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하는 것 –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은 점점 더 적게 보게 되고,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몇 가지를 더 듣게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6)
우리는 시각과 청각이라는 감각이 객관적인 정보를 그대로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니체는 이 문장을 통해 감각의 불완전함이 오히려 새로운 종류의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역설을 통찰한다.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점차 시야가 좁아지지만, 제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상상하며 '몇 가지를 더' 듣게 된다는 것이다.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은 단순히 시력이 나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세상을 고정된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경험에 부합하는 것만을 보려 하고, 그 외의 것들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배제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시야는 점점 더 좁아지고, 결국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특정 정치적 신념에 갇힌 사람은 반대 진영의 좋은 정책 제안은 보려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보만을 찾아다닌다. 이처럼 잘 보지 못하는 것은 물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반면, '잘 듣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니체의 통찰은 더욱 흥미롭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고,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의 맥락과 표정을 더 섬세하게 관찰한다. 그는 들리지 않는 부분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채워 넣으며, 말하는 이의 숨겨진 의도까지 읽어내려 노력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듣기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단순히 언어적인 정보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표정, 몸짓, 말투, 그리고 그 이야기의 배경까지 종합적으로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 모든 것에 더욱 민감해지며,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상상력을 동원해 파악하려 한다.
'잘 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를 편협한 시야에 가두지만, '잘 듣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발견하는 통찰력을 선물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만 의존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감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깊은 진실을 보려 노력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