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의 아이러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68. 참회 -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나면 그 죄를 잊어버린다. 그러나 대개 다른 사람은 그의 죄를 잊지 않는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2)


우리는 잘못을 고백하는 행위를 관계 회복의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면, 얽혔던 매듭이 풀리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 기대한다.


고백은 고백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심리적 해방감을 준다.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말로써 타인에게 넘기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느낀다.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이제 후련하다’는 생각은 그들을 과거의 잘못에서 손쉽게 벗어나게 해준다. 그들은 자신의 고백이 상대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헤아리기보다, 자신의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마치 오랫동안 앓던 병을 의사에게 털어놓고 나면 병이 다 나은 것처럼 착각하는 환자와 같다. 그들에게 고백은 종결의 행위이지만, 듣는 이에게는 그것이 바로 상처의 시작일 수 있다.


몇 년 전, 친한 친구가 나에게 다른 친구들 앞에서 내 험담을 했던 사실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고, 나는 그 순간의 어색함과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 “괜찮다”고 답했다. 그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 이후 정말로 모든 것을 잊은 사람처럼 나를 대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의 고백은 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남겼다. 그가 나 없는 곳에서 나를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상상하게 되었고, 그와의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갔다. 그는 자신의 죄를 잊었지만, 나는 그의 죄를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의 고백은 관계를 회복시킨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짊어져야 할 기억의 짐을 남겼을 뿐이다.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일방적인 고백은 폭력일 수 있다. 진정한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으로 인해 상대가 짊어지게 된 기억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그 기억을 극복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말뿐만이 아닌 행동으로 신뢰를 다시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쉽게 고백하고 더 쉽게 잊으려 하지만, 타인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고백은 끝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일 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정 욕구와 자기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