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70. 불꽃 속의 그림자 - 불꽃은 그 자체로는 그것이 비추어 주는 다른 것들만큼 그렇게 밝지 못하다 : 현자 역시 그렇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12)
촛불 하나는 어두운 방 전체를 밝혀 우리가 책을 읽고,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길을 찾게 해준다. 관찰자인 우리에게 불꽃은 순수한 빛과 명료함의 원천이다. 하지만 불꽃 그 자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심지를 태우며 자신을 소모하는 격렬한 연소 과정일 뿐이다. 그 중심은 빛이 아니라 뜨거운 열기와 소멸의 과정이다. 즉, 타인에게는 명확한 빛을 제공하지만, 그 자신은 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림자를 품고 있는 것이다.
대학 시절, 모든 학생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노교수님이 계셨다. 그의 강의는 복잡한 철학 개념을 명쾌하게 풀어주었고, 그의 인생 조언은 막막했던 미래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학생들에게 그는 의심할 여지 없는 ‘현자’이자, 우리를 비추는 ‘불꽃’이었다. 하지만 졸업 후 우연히 그를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을 때, 나는 그의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의심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불안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수많은 학생의 길을 밝혀주느라, 정작 자신의 그림자를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지혜는 타인을 비추는 데 사용될 때 가장 밝게 빛났지만, 그 빛은 그의 내면 깊숙한 곳의 불안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부모는 자녀에게 현명한 조언을 건네며 그들의 길을 밝혀주지만, 정작 자신들은 똑같은 문제로 밤새 고민한다. 뛰어난 상담사는 내담자의 얽힌 마음을 풀어주며 빛을 선사하지만, 자신의 상처와 씨름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지혜란 완벽하게 깨달은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태워 타인을 위해 빛을 만들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니체의 통찰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완벽한 지혜, 완전무결한 현자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지혜는 흠결 없는 밝음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그 어둠 속에서도 기꺼이 빛을 내뿜으려는 용기에서 나온다.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주기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은 그 순간 이미 현자다. 자신의 내면은 여전히 어둡고 혼란스러울지라도, 그 불꽃이야말로 세상을 밝히는 가장 인간적이고 위대한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