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590. 마지막 위로의 수단으로서의 자만심 - 만약 사람들이 불행, 자신의 지적 결함, 질병을 정리하여 그 속에서 미리 지시된 자신의 운명, 시험 또는 과거에 범한 것에 대한 비밀스러운 처벌을 보게 될 경우, 그것을 통하여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흥미롭게 만들고 생각 속에서 이웃을 얕잡아본다. 자부심을 가지는 죄인은 모든 교회의 종파에서 찰 알려진 인물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06)
인간은 의미 없는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자신의 불행, 결점, 심지어 질병까지 특별한 이야기로 포장하곤 한다. 철학자 니체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며, 이것이 ‘마지막 위로의 수단으로서의 자만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불행은 사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우연히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무작위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의 고통에 서사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이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야’, ‘내가 특별하니까 이런 고통을 겪는 거야’ 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장의 고통을 견디게 해주는 위로가 된다. 무의미한 피해자가 되는 대신, 비극적 운명을 짊어진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니체의 말처럼,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흥미롭게’ 만든다. 평범하고 지루한 삶이 아니라,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담긴 드라마틱한 삶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위로가 은밀한 우월감, 즉 ‘자만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겪는 고통이 특별한 ‘시험’이라면, 그 시험을 겪지 않는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덜 중요하거나 덜 깊이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너는 이런 고통을 겪어보지 않아서 몰라”라는 생각 속에는, 고통을 통해 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사는 타인에 대한 얕은 무시가 섞여 있다. 니체가 예로 든 ‘자부심을 가지는 죄인’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죄 자체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로 인해 겪게 된 극적인 고통과 회개의 드라마를 통해 자신이 다른 평범한 신자들보다 더 깊은 영적 체험을 했다고 여기며 우월감을 느낀다.
니체는 이러한 자만심이 고통을 이겨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지막 위로의 수단’일 뿐이다. 자신의 불행을 특별한 훈장처럼 여기는 태도는 진정한 성장을 방해하고, 타인과의 공감대를 허물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강한 정신은 자신의 고통을 남들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찾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서 담담하게 마주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니체의 통찰은 우리에게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위로라는 명목 아래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그 위로가 타인을 향한 오만함으로 변질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