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길 위에서 완성되는 새로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46. 조상들의 길- 자신의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가 수고륨 아끼지 않은 재능을 그 자체로 계속 단련하여 전혀 새로운 그 무엇으로 바꾸어 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성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자신의 그 어떤 참견에서든 완성의 가능성을 스스로 앗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담은 “너는 어느 길을 말을 타고 달릴 것인가? 그 길은 너의 조상의 길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0)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움’과 ‘창조’를 강요한다. 우리는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과거와의 단절이야말로 진정한 독창성의 증거라고 믿곤 한다.

니체는 ‘조상들의 길’을 따르는 것이 ‘이성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장 효율적이고 지혜롭게 완성에 도달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혼자 집을 짓기 시작하는 사람은 땅을 고르고, 기초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는 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다. 반면, 할아버지가 기초를 다지고 아버지가 기둥을 세운 집을 물려받은 사람은 바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으며, 내부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니체가 말하는 ‘완성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선대가 쌓아 올린 기반 위에서 시작할 때, 우리는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높은 차원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이러한 계승은 창의성의 말살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창조를 위한 발판이 된다. 니체는 물려받은 재능을 ‘계속 단련하여 전혀 새로운 그 무엇으로 바꾸어 놓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과거의 유산에 자신의 시대정신과 개성을 더하여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창조적 계승을 의미한다. 위대한 예술가나 과학자들의 역사를 보면 이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그들은 결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지 않았다. 수 세대에 걸쳐 축적된 지식과 기술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뒤, 거기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더하여 인류의 지평을 넓혔다. 과거는 발목을 잡는 족쇄가 아니라,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단한 디딤돌인 셈이다.

‘너는 어느 길을 말을 타고 달릴 것인가? 그 길은 너의 조상의 길이다’라는 속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며 일부러 험난한 가시밭길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가? 조상들이 닦아놓은 평탄한 길을 낡고 고루하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한 개성과 독창성은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완성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시작될 때 가능하다. 조상들의 길은 우리를 가두는 울타리가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세대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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