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가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by 이시영

292. 앞으로 나아가라- 그러면 확실한 발걸음과 신뢰를 가지고 지혜의 길로 나아가라! 네가 어떤 존재이든 스스로 경험의 샘이 되어 너 자신을 도우라! 너의 본질에 대한 불만을 던져버리고 네 자신의 자아를 용서하라. 왜냐하면 어쨌든 너는 인식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백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사다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행복 때문에 깊은 유감을 가지고 네가 던져진 것으로 느끼던 시대는 너를 복되다고 찬양하고 있다. 시대는 너에게, 아마 나중의 사람들은 없이 지내야 할 경험들도 지금 너에게는 여전히 주어지도록 환호를 보내고 있다. 아직까지 종교적이었던 시대를 경멸하지 말라. 어떻게 네가 아직도 예술에 진정하게 접근하고 있었는지를 철저하게 규명하라. 너는 바로 이러한 경험들의 도움으로 앞서 간 인류의 엄청난 길의 여정을 더욱 잘 이해하며 뒤따라 갈 수 있지 않을까? 고대 문화의 가장 훌륭한 열매들 중 많은 것이 때로는 네 마음에 들지 않는 그 땅, 즉 순수하지 못한 사고의 바로 그 땅에서 성장한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종교와 예술을 어머니와 유모처럼 사랑 해봤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명해질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서 바라보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 마력속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너는 역사에 정통해야 하고, '이쪽저쪽의 조심스러운 저울접시 놀이에도 정통해 있어야 한다. 과거의 황야를 통해 그 고통에 찬 위대한 걸음을 걸었던 인류의 발자취를 밟아서 거꾸로 거닐어보라. 그러면 인류가 결코 다시 갈 수 없고 가서는 안 되는 곳을 너는 가장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미래의 매듭이 또 맺어질 것인지를 전력을 다하여 미리 탐색함으로써, 네 자신의 삶은 인식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얻게 된다. 네가 체험한 모든 것,모든 시도, 오류, 실수, 착각, 정열, 너의 사랑과 희망이 너의 목표속에서 남김없이 꽃을 피우도록 성취하는 것은 네 손에 달려 있다. 이 목표란, 스스로 문화의 고리의 필연적인 하나의 사슬이 되는 것이며, 이 필연성에서 보편적인 문화의 진행 속에 있는 필연성을 추론하는 일이다. 만약 너의 눈이 너의 본질과 너의 인식의 어두운 샘 밑바닥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져 있다면, 아마 그 거울 속에서 미래 문화의 먼 별자리도 보일 것이다. 너는 이러한 목표를 지닌 그러한 삶이 너무나 힘들고 모든 유쾌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너는 아직 그 어떤 꿀도 인식의 끌보다 달지 않다는 것, 드리워진 고난의 구름도 하나의 유선으로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으며 너는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 그것에서 우유를 짜내게 되리라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노년이 되면, 네가 얼마나 자연의 목소리, 즉 세계 전체를 쾌감을 통하여 지배하는 저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올바르게 깨달을 것이다: 노년에야 정점에 이르는 그 삶은 지혜속에서도, 변함없는 정신적 기쁨의 그 부드러운 태양의 광채 속에서도 역시 그 정점을 갖고 있다. 너는 이 두 가지, 즉 노년과 지혜를 삶의 한 산등성이에서 만나게 된다. 자연이 그렇게 원했던 것이다. 그 후 죽음의 안개가 다가오는 것은 때가 왔다는 것이며, 화를 낼 아무런 까닭도 없다. 빛을 향하여 - 너의 마지막 움직임, 인식의 환성-너의 마지막 목소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미기 옮김,책세상,2019. p.283)


삶은 인간에게 있어 끊임없이 전진하는 여정과도 같다. 때로는 순탄하고 때로는 험난한 이 길 위에서, 인간은 무엇을 목표로 삼고 어떻게 발걸음을 옮겨야 할까 고민한다.

삶의 진정한 배움은 책 속의 지식이나 남의 이야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직접 부딪히며 실패를 통해 배우는 과정에서 더욱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자기 주도적인 경험은 인간을 더욱 단단하고 유연하게 만들며, 삶의 어떤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을 길러준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실수하고, 약점을 보이며, 자신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완전함에 대한 불만은 종종 자기 비난으로 이어져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임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수용은 나약함이 아니라 진정한 강인함의 시작이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인정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인간은 내면의 평화를 찾고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과거의 실수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자신의 본질을 용서하는 것은 과거의 짐을 덜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다.

삶의 끝에 대한 통찰도 제시된다. 노년이 되면,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자연의 목소리, 즉 세계 전체를 쾌감을 통하여 지배하는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올바르게 깨달을 것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은 자연의 거대한 흐름과 조화를 이루며, 존재의 근원적인 쾌감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삶의 모든 순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그 안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 모두가 의미 있는 경험임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 뒤에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는 죽음의 안개가 다가오는 것은 때가 왔다는 것이며, 화를 낼 아무런 까닭도 없다고 말한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단계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마치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듯, 삶의 모든 순간이 그러하듯 죽음 또한 자연의 섭리 안에 존재한다.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빛을 향하여 나아가는 마지막 움직임, 인식의 환희를 담은 마지막 목소리. 이 구절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식의 환희를 추구하는 숭고한 과정임을 일깨워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존재의 긍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