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긍정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by 이시영

287. 삶의 평가-사랑과 증오가 교체되는 것은 오랫동안 삶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는 인간의 내면적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그는 잊어버리지 않고 사물들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마침내 그의 마음의 칠판이 경험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면, 그는 현존을 경멸하지도 증오하지도 않게 된다. 더욱이 사랑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현존 위에 누워 때로는 기쁨의 눈으로, 때로는 슬픔의 눈으로 그리고 때로는 마치 자연처럼 여름같은 기분에, 때로는 가을 같은 기분에 젖어 있게 될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19. p.280)


나는 내 삶을 한 편의 영화나 소설처럼 상상한 적이 있다. 그 안에서 주인공이 되어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사건에 울고 웃으며 감정을 소비한다. 그리고 문득, 이 이야기가 잘 흘러가고 있는지,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행복한 장면인지, 불행한 순간인지, 좋았던 경험인지, 후회스러운 기억인지 끊임없이 평가하고 분류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러한 평가 방식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나는 끊임없이 내 삶을 긍정과 부정의 틀 안에 가두려 하는 걸까? 현실은 수많은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데, 왜 나는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 완벽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걸까?

우리는 흔히 삶의 순간들을 '좋다' 아니면 '나쁘다'로 빠르게 판단하고 분류하려 한다. 사랑하는 것과 증오하는 것을 반복하며 감정의 진자 운동에 갇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흑백 논리적인 판단은 삶의 풍부한 스펙트럼을 놓치게 만든다. 긍정적인 감정만을 붙잡으려 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외면하려 애쓰는 순간, 우리는 삶의 진정한 흐름으로부터 멀어진다.

얼마 전 나는 오랫동안 믿고 의지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끝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에는 이별이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깊은 슬픔과 후회에 잠겨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와 같은 자책과 원망은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이별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아픔을 통해 나는 더욱 성숙해졌고,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었다. 과거에 얽매여 슬픔에 잠겨 있었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경험은 더 이상 나에게 '좋았던 것'이나 '나빴던 것'이 아닌, 그저 '나의 삶에 일어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성공과 실패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짜릿한 기쁨을 잊지 못한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한 만족감에 휩싸이곤 한다. 하지만 곧이어 찾아오는 불안감, '이 기쁨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또한 떨칠 수 없었다. 반대로, 실패했을 때는 깊은 좌절감에 휩싸여 쉽게 무력감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성공과 실패를 영원불변의 가치로 여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흐름 속에서 잠시 머무르는 순간일 뿐이다. 성공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어둡고 슬픈 장면이 있더라도, 그 또한 내 삶의 진실된 일부임을 인정하려 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하는 과거의 나에게, 그리고 여전히 완벽한 삶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이 작은 변화가 한 줄기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평가 없는 나의 삶은 어쩌면 자유롭고, 다채롭고, 진실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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