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515.

경험으로부터-어떤 사건이 불합리하다는 것은 그 사건의 현존을 부정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현존의 한 조건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19. p.399)


우리는 흔히 불합리한 것을 배제하거나 부정하려 한다. 마치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불필요한 선을 지우듯이, 삶에서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요소들을 제거하려 애쓴다. 하지만 니체의 말은 이러한 시도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존재의 한 면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불합리함은 존재하지 않아야 할 '오류'가 아니라, 오히려 존재를 구성하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는 삶의 모든 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즉 존재에 대한 깊은 긍정을 의미한다.

나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불합리한' 순간들을 마주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는 슬픔, 혹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 같은 것들 말이다. 한때는 이런 불합리함 앞에서 좌절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이건 말도 안 돼!'라고 외치며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고통은 더 커졌고,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거센 파도를 거스르려 애쓰는 작은 배처럼, 나는 불합리한 현실 앞에서 힘없이 흔들릴 뿐이었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불운이나 불공정한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들이 삶의 현실을 부정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불합리한 일들이 발생한다는 사실 자체가 삶의 한 과정임을 인정해야 한다. 희귀병으로 인해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나는,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억울하고 서럽지만, 그것이 나의 존재를 부정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겪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세상은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깨달았다. 불합리함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며, 때로는 그 불합리함 속에서 더욱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불합리하다'고 단정하고 외면하기보다는,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려 했다. 때로는 그 불합리함 속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며 겸손함을 배우기도 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인간의 감정을 떠올린다. 사랑, 질투, 분노, 슬픔 등 인간의 감정은 때로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지, 왜 질투하는지, 왜 화가 나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 감정들은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이러한 감정들을 '불합리하다'고 부정한다면, 우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불합리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욱 성숙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

결국, 어떤 사건이 불합리하다는 것은 그 사건의 존재를 부정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한 조건이다. 이는 삶의 모든 면을, 심지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온전히 긍정하라는 메시지다. 불합리함은 삶의 그림자처럼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며, 때로는 우리를 시험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고 직면할 때, 우리는 삶의 깊이와 다양성을 더욱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오늘, 나의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불합리한 순간들을 다시금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불합리함을 부정하기보다, 그것을 존재의 한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지혜로운 태도일 것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삶에서 마주하는 불합리함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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