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71. 희망-판도라는 재앙들로 가득 찬 상자를 가져와서 열었다. 이것은 신들이 인간에게 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매력적인 선물이었고 '행복의 상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그때 상자에서는 날개를 단 살아있는 온갖 재앙이 튀어나왔다 : 재앙들은 그때부터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밤낮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쳤다. 그러나 상자에서 단 하나의 재앙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인간은 판도라가 가져온 상자가 재앙의 상자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재앙이 행복의 최대 보물인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인간이 다른 심한 재앙에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면서 계속 새로운 고통에 잠길 것을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희망은 실로 재앙 중에서도 최악의 재앙이다. 왜냐하면 희망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책세상, 2019. p.92)
판도라의 상자는 신들이 인간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판도라라는 여성을 만들고, 그녀에게 아름다운 상자를 주었다는 이야기다. 상자를 열면 행복이 가득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온갖 재앙이 가득한 상자였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질병, 고통, 슬픔 등 모든 악이 쏟아져 나와 세상에 퍼졌다. 놀란 판도라가 상자를 닫았을 때, 그 안에는 단 하나, '희망'만이 남아 있었다는 내용으로 알고 있다. 그 희망은 당연히 행복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힘이라고 믿어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니체는 이런 믿음을 덧없는 희망, 현실을 외면하게 한다. 당장 마주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언젠가는 잘 되겠지',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마치 눈앞의 거대한 벽을 보고도, 언젠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 믿으며 그저 바라만 보는 것과 같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고 노력하기보다는, 희망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태도를 길러주었다.
덧없는 희망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었지만, 동시에 현실을 직시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기회를 빼앗아갔다. 희망은 때로 달콤한 독처럼, 우리를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잠시 멀어지게 하지만, 결국 더 큰 문제를 마주하게 하는 그림자를 드리운다.막연한 희망, 고통을 연장시킨다.더욱 잔인한 것은, 막연한 희망이 때로 고통을 연장시킨다는 사실이다. 미래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디게 만들지만, 정작 희망이 실현되지 않을 때 이전보다 더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공상적인 희망은 때로 고통의 원인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할 수 있다. 마치 몸이 아픈데도 '곧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으로 병의 원인을 찾지 않고 방치하는 것과 같다.
루쉰은 그의 소설 <고향>에서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지상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지상에는 길이 없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희망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행위, 즉 현실에서 노력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다. 막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자국을 남기며 만들어가는 길처럼, 희망 또한 우리의 능동적인 의지와 노력으로만 실재할 수 있다. 공상적인 희망에 갇혀 문제의 근원을 외면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길을 잃고 헤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희망의 그림자를 넘어, 삶을 직시하는 용기다.결국, 판도라의 상자에 남겨진 희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단순한 축복이 아닐 수 있다. 때로는 현실 도피를 부추기고, 고통을 연장시키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가로막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희망에 매달리는 대신,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