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의 시대, 중용의 통찰"
“야, 적당히 해라.”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지만, 가장 이해 못 했던 말! 어릴 땐 ‘적당히’라는
단어가 참 못마땅했다. 대충 하라는 말처럼 들렸거든.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적당히 “하라니, 그게 뭔데? 그럼 난 보통밖에 안 되는 거잖아?
‘중용’이라는 말도 그렇게 이해했다.
중간만 하라는 거야? 어중간하게 살라는 거야?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앞서가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딱 거기까지만, 적당히 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건 너무 평범한 거잖아. 평균값“ 특출 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누가 그런 걸 원해?
『중용(中庸)』 처음엔 그 단어가 좀 얄미웠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살았다. 더 뜨겁게, 더 확실하게, 더 끝까지, 한쪽으로 치우친 걸 ‘몰입’이라 말하며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늘 기대하고, 실망하고, 후회했다. 불타는 마음엔 자꾸만
꺼진 재가 쌓였고, 도전은 많았지만 지속은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됐다.
“중용은 그저 그런 중간값이 아니라, 가장 적절한 값이었다.”
사람 사이, 인간관계는 늘 온도 조절이다.
좋아한다고 너무 들이대면 부담스럽고, 싫어한다고 내색하면 멀어지고, 사랑한다고 티를 내면
상대는 도망가고,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하면—그 사이는 어느새 식어버린다.
그러니 결국, 이런 관계 속의 중용이란 건, 내가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우리 둘 다 부담스럽지 않은
지점을 찾아가는 , 서로의 온도를 조금씩 맞춰가는 긴 조율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내가 옳다”가 아니라,
“너도 괜찮고 나도 괜찮은” 선. 그래서 중용은 어쩌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함이 아니라,
적당히 따뜻한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려는 꾸준한 노력이다.
“이성적으로는 중간을 지향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아주 정밀한 온도 조절이 필요하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사와의 농담에도 멈춰야 할 타이밍이 있고, 동료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말을 걸기
전엔 분위기를 살피는 눈치도 필요하다. 열정도 중요하지만, 무턱대고 불타기만 하면 남는 건
피로과 번아웃뿐이다.
생각해 보면, 선배들이 말하던 “야, 적당히 해”라는 말도 그냥 중용을 일상어로 툭 내뱉은
조언이었는지도 모른다. “너 지금 조금 지나쳐. 이쯤에서 균형 잡자.”그 적당히가 포기도 ,
대충도 , 무심함도 아니다. 그건 조율이다.
말의 세기를 줄이고, 눈빛에 여유를 넣고, 행동에 브레이크를 다는 기술.
사실 중용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우리 삶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작고 조용한 지혜다.
나는 이제야 그 말이 조금 이해된다.
“중용, 내가 선택한 삶의 기준”
ㅡ중용은 단순한 ‘중간’이 아니다.
무조건 가운데를 택하는 회색지대가 아닌,**지나침도 부족함도 피하는 ‘균형’**이다.
ㅡ중용은 조화다.
나와 타인, 사회, 자연 간의 관계 속에서 서로 어긋나지 않고 맞춰가는 태도다.
ㅡ중용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마음이다.
외부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의 중심을 따르며 흔들리지 않는 것.
ㅡ중용은 충돌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조율하는 능력이다.
갈등을 덮지 않고,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해법을 찾아내는 지혜다.
ㅡ중용은 성장이다.
나를 지키면서도 타인을 이해하고, 극단이 아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중용은 스펙이 될 수 있을까?
무한경쟁의 시대다. 속도는 무기가 되었고, 변화는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되었다.
최고의 자격, 최고의 스펙, 최고의 성과. 세상은 늘 최고만을 요구한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중용”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가는 미덕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능력 아닐까?
요란하지 않게 과하지 않게 덜어내고 맞추는 감각. 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게 해주는
고요하지만 단단한 힘. 지금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오히려 그 느긋한 미덕이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중용”을 내 인생의 단어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내 몸에 새긴다!
『중용(中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