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에서 우연히 만난 귀여운 요물~
새벽 다섯 시.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
원주까지 120Km. 내비게이션은 한 시간 반이라 했다.
창밖은 계속 풍경이 바뀐다.
비닐하우스가 드문드문 보였고, 창고 같은 건물과 주차된 택배 차량들,
풀잎에 서리가 남아 있었고, 간간이 전조등이 반사되어 어두운 창에
흐릿한 내 얼굴이 지나간다.
골프장도착 10분 전. 뒷자리의 그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편의점 좀.. 골프공을 사야 해서요"?..?
갑자기라기보단, 자기 속도대로였고, 나는 그 타이밍에 익숙했다.
전면 유리창 너머로 편의점 간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나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름한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나왔다.
그 안에 든 건 리필공? 중고 골프공이었다. “잃어버릴 것 같아서.. 여기 처음이거든요.”
나는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는데.." 참~검소하신 회장님~
다시 출발.
입구는 웅장했다. 돌기둥 두 개 사이로 세워진 회색빛 철문이 자동으로 열렸고,
나무들은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소나무였다. 가지치기를 정밀하게 받은, 마치 조경용으로 태어난 것 같은 나무들.
길은 오솔길처럼 좁고 구불구불했지만 포장은 매끈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출입구 앞에서 90도로 허리를 숙이신다.
이른 아침부터, 매일같이 그래 왔을 것이다.
‘굳이 저렇게까지…’그 생각이 맴돈다.
아무도 , 이름을 묻지 않고, 누구도 오래 기억하지 않지만,
매일 그 자리에 가장 먼저 나와, 세상에 예의를 건네는 사람.
저 인사는 누구를 위한 걸까? 아니면 본인이 스스로 지켜온 어떤 삶의 질서인지..
입구에서 클럽하우스까지 1.8km.
차창 밖은 단정하고 고급스러웠다. 골프장이라기보다 리조트에 가까웠고,
이름 모를 새들이 간헐적으로 울었다.
도착하자, 직원들이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동작은 정확했고 각도도 일정했다.
‘여기 뭐 이런 분위기야? 원래 이렇게까지 맞춰야 되는 거야?’
‘환영받고 있는 게 아니라… 연출되고 있는 거 같은데?’
마른 웃음을 숨기며 속으로만 되뇐다.
그는 천천히 내렸고, 나는 보스턴백을 건넸다. “고생했어요"그는 웃지도 않고,
다정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에 들린 건 오만원권 두 장.
나는 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오는 길에 본 호수로 향했다.
호수는 주 진입로에서 약간 벗어난 지점에 있었고, 차 몇 대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차를 세우고 창문을 조금 내렸다.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고, 나무 그림자는 물 위에 살짝 떠 있다.
사람들이 많은 곳보다 아무도 없는 물가가 더 어울리는 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클럽하우스를 지나, 카트에 올랐을 것이다.
그 두 풍경 사이의 온도차가 문득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게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스르르.. 스르륵—조용히 잠들어 가는 중이다.
ㅡ
오전 11시.
부스스한 얼굴로 어쩌다 근처 동네 공원까지 걸어갔다.
딱히 누굴 찾는 건 아닌데, 그냥 어슬렁거린다.
그렇게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는데, 꼬물꼬물,
작고 동그란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 ㅋ ㅋ 방긋
눈이 동그랗고, 털이 몽실하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발걸음.
자연스레 손이 나갔다. 쓱쓱, 쓰다듬는다. “아유 귀여워.”
그 작고 귀여운 존재가 기다림의 피로를 싹“지워주는 느낌이다.
“귀여운 건, 이렇게 편하게 쉽게 다가갈 수 있구나.”
난 늘.. 이쁜 것 앞에선 한 박자… 늦는다.
아~예쁘다 “… 까진 되는데, 다가가는 건 … 망설여진다.
그건 관망이지, 관심은 아니다.
이쁘면 단지 시선을 보낼 뿐, 귀엽다면 손이 먼저 움직인다.
그게 이 세상이 정한 무의식의 질서인 듯.
생각해 보면, 나의 과거 취향도 그랬다. 처음엔 예쁘고, 화려하고,
사람들 시선을 모으는 그런 스타일에 끌렸던 것 같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귀엽고 편안한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예쁘다는 건 거리감이 있고, 귀엽다는 건 여지를 만든다.
한 발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함. 거절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그게 귀여움이 가진 힘일지도.
그래서인지 요즘은 기업도, 브랜드도, 모두 귀여운 걸 만든다.
말랑한 캐릭터, 통통 튀는 이름, 편한 이미지.
너무 반짝이는 것보다는 작고 부드러운 것에 손을 뻗는 시대“
아마 , 우리 모두가. 예쁨만을 추구하는 세상’에 지쳐버려서 그런 걸 거다.
오늘 만난 그 강아지도 그렇다.
이름도 몰랐고, 주인 얼굴도 기억 안 나는데,
그 존재 하나로 … 지금까지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쁨과 귀ㆍ여ㆍ움“…그 차이를 알게 되는 순간,
어. 쩌. 면 지금 내가 원하는 관계도, 그런 ‘귀여운 거리’인지 모르겠다.
무심히 다가가도 괜찮은…
거절당해도 덜.. 아픈—그런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