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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Feb 12. 2024

장욱진은 '까치'를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1] 장욱진(張旭鎭, 1917~1990)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은 평생 730여점의 유화를 남겼다. 그 가운데 약 440점, 즉 60% 이상에 달하는 작품에 까치가 등장한다. 10점 중 6점에 까치가 그려진 셈이다. 그가 까치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인 1925년경부터다. 당시 미술책에 그려진 까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온통 새까맣게 칠한 까치를 그런 적이 있다고 한다... 장욱진에게도 까치는 평소 생활에서 쉽게 마주하는 친근한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심상을 투영시키는 대상이었다." (전시회 설명 글)


장욱진이 평생 그린 그림들 가운데, 열 점 중에 여섯 점에는 까치가 등장한단다. <가장 진지한 고백>에 전시된 작품 가운데서도 까치가 단연 최다 출연이다. 전시회측 설명에 따르면, 장욱진이 까치에 꽂힌 건 초등학생 때라고 한다. 


까치가 어린 시절 장욱진에게 어떤 '화인(火印)'으로 남았길래, 그의 그림들에 '메멘토'처럼 등장한 것일까? 심지어 그의 자화상에도,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에 그린 마지막 유화 작품에도 까치가 등장한다. 그의 그림에 등장한 까치의 모습은 추상(抽象)부터 구상(具象)까지 다양하다.


첫번째 '까치'라는 제목의 위 그림에 대한 전시회 주최 측의 작품 설명은 아래와 같다.


▲ <까치 Magpie>

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Oil on canvas, MMCA


화면을 가득 채운 둥근 형상의 나무 속에 정적인 자세로 서 있는 까치 한 마리와 나무 끝에 걸려 있는 그믐달을 단순화하여 그린 작품이다. 모든 대상은 원근법과 비례를 무시하고 평면적으로 그려졌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푸른 색조로 인해 설화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한다.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다시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만들어낸 화면의 질감에서 자연스러운 밀도감을 느낄 수 있으며, 간결한 형태와 세련된 색채에서 치밀한 구성력을 볼 수 있다. 날카로운 필촉과 함께 화면의 물감층을 무수히 긁어낸 모습은 마치 긴 밤 끝나자 '깍까' 소리를 지저귀며 새해를 알리는 까치의 청각적 요소를 시각화한 듯해 주목된다.


※ 개별 그림 아래 전시회 주최 측의 해당 작품 설명 글을 붙여놓았습니다.


#장욱진 #가장진지한고백


▲ <나무와 새 Tree and Bird>

195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장욱진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해와 달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나무 속 아이의 올려다 보는 시선은 자연스럽게 나무 위의 마을로 향하는데, 이때 아이는 나무에 올라와 있는 동시에 마을의 공간에도 놓이게 된다.


이러한 공간의 전환으로 다른 두 개의 공간이 하나로 중첩되면서 환상적인 느낌을 더한다. 1958년 2월 한국정부, 월드하우스갤러리, 한국재단의 공동 주최로 열린 《한국현대회화전 Contemporary Korean Paintings》에 선정되어 전시됐다.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당시 조지아대학의 동양미술을 강의하던 엘렌 프세티 코넛트(Ellen PSATY Conant, 1921~)가 선정했다. 당시 선정된 장욱진의 작품 수는 2점으로 신문기사에 소개됐지만, 실제 전시 브로슈어에서 확인되는 것은 이 작품 뿐이다.


▲ <새와 나무 Bird and Tree>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옆에 전시된 1958년작 〈까치>와 이 작품은 장옥진에게 까치가 조형적 실험의 대상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단순화 시킨 나무의 형태와 나무 끝에 걸린 그믐달은 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조형적으로 마치 새의 상형문자를 그려넣은 듯한 모습에서 같은 대상을 그렸어도 발상과 방법에 따라 수도 없이 다른 그림을 창작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출신 화가들이 조직해 개최한 《2.9 동인전》(1961)에 출품한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근무 시절 직장 동료이기도 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김원룡 교수가 전시회에 찾아와 당시 한 달 월급인 2만 환을 봉투째 놓고 구입해 간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은 별칭인 '야조도(夜鳥圖)'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김원룡 교수가 명명한 것으로 '밤에 나는 새'를 의미한다. 김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화면의 주조는 표현할 수 없이 밝고 깊은 독특한 푸른색이고, 그것이 새의 흑색과 잘 조화해서 사람을 고요한 환상의 세계로 끌어당기고 있었다"라고 평했다.


▲ <바위岩 Rock>

1960, 캔버스에 유화 물감과 연필, 개인소장

Oil and penc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제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0) 출품작(초대작가)


1961년 10월에 열린 《제9회 국전》에 초대작가 자격으로 출품한 작품이다. 화면 상단에는 햇무리 진 하늘을, 하단에는 가운데가 오목한 둥글고 검은 바위 산을 배치했다. 면분할 된 산 아래에는 꼬리를 치켜올린 새가 당당하게 서 있다. 


이 작품은 물감을 두텁게 바르거나 긁어내지 않고, 물감을 칠한 화면 위를 테레빈유로 닦아내는 방식을 시도했다. 이미 칠한 물감을 다시 닦아네면서 농담과 형태를 조절하여 독특한 얼룩을 만들어 내는데, 이렇게 캔버스올이 보일 정도로 얇게 만드는 마티에르 표현은 노년기까지 이어진다.


▲ <나무와 까치 Tree and Magpie>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Oil on canvas,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극히 제한된 소재와 단순한 구도임에도 불구하고 조형적으로 밀도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형태의 배치와 마티에르의 적절한 운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화면 중심에 자리잡은 까치가 인물보다 훨씬 크게 표현되어 있는 것은 대상에 심리적인 비례를 적용했던 장욱진 그림의 전형을 보여준다. 둥근나무에 상응하는 뚱뚱한 까치가 인상적이다.


▲ <까치 Magpie>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Oil on canvas, MMCA Lee Kun-hee collection


한반도에 서식하는 까치는 유럽이나 중앙아시아 등에 서식하는 까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날개가 길고 꽁지가 짧으며, 꽁지깃에 보라색 광택을 지닌다. 몸통은 검은색인데 반해, 어깨와 배, 날개 부분이 흰색으로 미적으로도 보기 좋을 뿐 아니라, 45cm 정도의 몸 크기가 위압적이지 않으면서도 너무 작지 않아 조형적으로도 그림의 모티프로서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나무의 색은 환한 연두색으로 빛나고, 나무한 가운데 그려진 까치의 모습은 영롱한 눈과 함께 까치의 강한 상징성을 드러내고 있다.


▲ <까치 Magpie>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농업박물관

Oil on canvas, National Agricultural Museum of Korea


장욱진의 까치 그림 가운데 이처럼 크게 그려진 까치는 없었다. 까치에 음영을 넣고, 눈을 그려넣지 않아 하나의 기념비처럼 느껴지는 박제된 듯한 까치의 모습이다. 화면 네 귀퉁이에 각각 해와 달, 정자와 초당이 쌍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작은 개 한마리만이 정확한 질서 속에 예외로 존재하는 듯 어슬렁 거리며 화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 <자화상 Self-portrait>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던 까치는 노년에 이르러 심산유곡에서 노니는 화가에게 소식을 전하는 전령으로 그려진 듯 하다. 초가에서 쉬고 있는 화가와 조응하는 까치는 자연 속에 파묻혀 사는 화가의 이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자연스런 붓질이 사라지고 표현이 극히 절제되면서 철저히 관념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 <나무 Tree>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음으로써 24시간 시간의 흐르지 않는 영원성을 보여주는 가운데 화면 밖으로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가 정체되어 있는 시간의 흐름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써 화면의 중심 축을 이루는 나무 사이로 각각 사선으로 떠 있는 해와 달은 아침부터 밤까지 하룻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케 하며 장욱진 그림이 갖고 있는 풍부한 서술성을 암시하고 있다.


▲ <안뜰 Courtyard>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소장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장욱진이 세상을 뜨기 전 두 달 전인 10월에 그린 마지막 두 점의 유화 작품 중 하나이다. 뼈대처럼 집과 인물을 그린 것은 1973년작 <부엌과 방>을 연상시킨다. 말년에 지금까지 본인이 시도했던 여러 방식들을 다시 한번 회고하는 측면에서 그려진 작품으로 보인다. 집과 울타리 등은 추상적인 평면성을 띠지만, 공간감을 암시하고 있으며,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그려진 화면의 구도는 장욱진의 뛰어난 조형 감각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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