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미즈사키 린타로와 수성못
나는 곧 잘 스즈에와 요 몇 년 전에 생긴 수성못에서 만나 놀곤 했다. 벌써 그게 7년이 다 되어 간다니 시간이란 참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성못은 미즈사키 린타로라는 한 일본인이 만들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의 의도대로인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수성못에는 외딴섬이 있다.
아직 겨울이 되면 백골같이 드러나는
이름 모를 외딴섬이 하나,
여름이 되면 파릇파릇한 나뭇잎들과 덩쿨들로 덮혀지는
백로와 왜가리, 가마우지들의 마을
「수성못의 외딴섬」
나는 스즈에와 만나고 나서 시조를 배웠다. 스즈에의 언니도 마찬가지로 시조를 배웠다. 나도 스즈에의 언니, 평강 언니(그 언니는 예전의 독립 운동을 했던 영향 때문인지 창씨개명 하는 것을 거부했다. 평평할 평(平)자에 큰 내 강(江)자로 일본어로 읽게 되면 히라에(ひらえ)였을 터라 그리 불렀겠지만 굳이 그쪽에서 거부했다면야 적어도 그렇게 부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처럼 어릴 때 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자주 도서관에 놀러 가고는 했는데 사실, 책만 읽으러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여름이 되면 도서관 입구 쪽에 있는 분수에서 물놀이를 하러 가자며 엄마의 치맛자락을 질질 끌어 당기다가 혼이 났다. 최종적으로 그렇게 엄마와 실랑이를 하고 나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내가 이겼다. 그렇게 해질녘까지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고 나면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물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대중 목욕탕이 생겨 가끔 엄마를 따라가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탕에서 헤엄을 치곤 했다. 그러다가 목욕탕 주인에게 혼이 나면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몰래 물장구를 치곤 했다. 나중에는 그 주인도 포기를 했는지 탕에서 물놀이를 하는 나를 내버려 두었다. 이렇게 보니 나는 정말로 철부지에 제멋대로인 악동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원래도 성질이 더럽다고 엄마나 이웃집 아주머니한테도 소리를 듣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장난스래 웃어 넘기곤 했다. 남들에게는 지옥이었겠지만 나는 나름 유쾌했다. 유쾌한 추억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물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 영향 때문인지 소학교 3학년생일 때의 장래희망을 수영 선생님이라고 정했던 것 같다. 그 증거는 그 당시에 내가 5년 뒤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쓴 것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잊고 있었던 꿈을, 아니, 잃어버린 꿈을 되찾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날아갈 듯이 기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추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중학교 때의 일 때문이리라. 요컨대, 나는 처음부터 이런 현실적이고 극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반이었던 한 일본인 남자아이와 어쩌다가 싸우게 돼서 당연히 담임 선생님께 불려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나름대로 억울함을 말하니 변명이라고 생각했던 선생님은 나에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 라고 말했다. 그때의 나한테는 꽤 충격이었다. 그런 논리로 따지면 역사는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몇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지금은 망국이 되어 버린 이 나라, 조선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건가? 나는 절망감을 느꼈고 집에 돌아와서 통곡을 했다. 그저 선생님이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억울함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분명히 이 미치루라는 이름조차 증오스러움을 느꼈을 정도였으니까.
*
개천룡지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목수석, 나츠메 소세키
미기홍엽, 오자키 코요
태재치, 다자이 오사무
삼구외, 모리 오가이
최근에 나는 일본의 작가들의 이름을 한자 이름 그대로 부르는 취미가 생겼다. 취미라고 하면 어폐가 있으려나. 그러면 습관이라고 하자. 종이에 끄적인 다섯 명의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감상한지 오래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두자춘, 나츠메 소세키의 산시로, 오자키 코요의 장한몽,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 모리 오가이의 무희 등등 전부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 원서를 직접 손에 넣어 읽을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일본어에도 재능이랄까 흥미를 보여 현지인 정도의 일본어 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어려운 한자가 나올 때를 빼면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 크나 큰 어려움은 없었다. 평소 책을 읽으면서 문학 장르 중 일본 문학을 접하게 되면서 저절로 일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대일본제국이라는 그 나라를 찬양하고픈 마음은 요만큼도 없다. 그저 일본의 문학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일본의 전통 문화를 좋아하게 된 것뿐이지 그 나라 자체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 논리인가 싶을 테지만 말 그대로였다. 어느 누가 조국을 빼앗은 전범국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나는 요즘 하목수석(나츠메 소세키를 일컫는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작품에 푹 빠져 있다. 하목수석의 속세를 비판하는 듯한 그의 해학적인 작품 속에서의 어조가 유쾌했기 때문이다. 일단 시점이 평범한 보통 소설과는 달리 어느 한 일본인 교사네 고양이로서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기에 신선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꽤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건 보편적으로 모두가 그의 소설을 읽으면 그리 생각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소설 뿐만 아니라 외국 시에도 관심이 많다. 물론, 일본 문인의 시나 유명한 서양의 시인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한 시인이 있는데 바로 나카하라 츄야이다. 나카하라 츄야의 시 중 “서커스”라는 작품이 있다.
몇몇 시대인지가 있었더랬고
갈색을 띤 전쟁이 있었습니다.
(중략)
머리는 거꾸로 하고 손 늘어뜨려
지저분한 무명천 지붕 아래서
유아아앙 유요오옹 유야유요옹
나카하라 츄야-”서커스” 中에서
나카하라 츄야의 특유의 오노마토페(의성어)가 독자로 하여금 흥겨움을 주는 게 참 마음에 들었는데 아마도 평소의 나카하라 츄야도 그런 유쾌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도 저절로 “유아아앙 유요오옹 유야유요옹”이라고 따라 부르게 되기 마련이다. 스즈에와 함께 수성못을 거닐 때 멍하니 유난히 여름의 푸른 하늘을 응시하며 나도 모르게 “유아아앙 유요오옹 유야유요옹”라고 하니 스즈에는 “풋” 하고 웃어댔다.
“그게 뭐야, 미치루.”“최근에 빠진 한 시인의 소리야.”
“마치 동물의 울음 소리 같이 말하네.”“그럴지도.”
나도 스즈에의 말에 동의하며 웃어 보였다.
우리는 미즈사키 린타로(모리 오가이의 본명도 린타로였던 것을 나는 무심코 떠올렸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수성못을 거닐었다. 미즈사키 린타로(水崎林太郞)의 미즈시마(水島)를 바라보며 억지로 말장난을 만드려고 했다가 이내 공통점이라곤 물 수(水)자가 들어간 것 말고는 찾을 수 없어서 이내 포기했다. 그러다가 나는 미즈사키라고 해야할 것을 미즈시마라고 말해버렸다. 스즈에는 무엇인가의 이상함을 느끼고 미즈사키라고 고쳐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수성못 입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그의 이름을 보며 잠시 걷는 것을 멈췄다. 바위를 응시하고 있던 나는 묘한 시선이 느껴져 스즈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 나니 스즈에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실망했어.”
“왜?”
“미치루가 한자를 착각하다니...”
“죽을 때가 다 됐나 보지.”
“···그렇게 말하지 마.”
나는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어 스즈에에게 나답지 않게 목소리를 내리 깔고 사과를 했다. 평소 같았으면 웃어 넘기거나 그냥 넘어갔을 일이지만 정말로 죽을 때가 다 된 건지 나답지 않게 행동했다. 분명 더위를 먹은 게 분명하다. 더위를 먹어서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 나는 스즈에를 재촉하여 마실 것을 사러 가자며 이 묘한 상항을 무마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스즈에는 “네가 사주는 거지?”라며 농담을 했다. 나는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