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모방 소설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이었다. 다친 곳은 별로 없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며칠 동안이나 코마 상태로 식물인간마냥 누워만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사이에 꿈을 꾸었다. 아니, 시간을 뛰어 넘는 사랑을 하고 왔다. 미래에 다녀온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자신은 10년 뒤에 죽는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들, 너와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남겨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을 다 잡았다. 하지만 속으로 고심했다. 만약, 내가 너를 만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만난다면 나는 적어도 서른두 살 때는 죽지 않는 걸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내가 과연 행복할 수는 있을까.
서른두 살, 그 이상으로 오래 산다고 해도 무슨 가치가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그 사람과의 아이를 이미 만나고 온 이상. 나는 결심했다. 너를 만나러 가기로. 그리고 제대로 사랑한다고 전하기로.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너를, 만나러 가도 될까?"
나는 장마가 끝난 뒤로 바로 너의 고향으로 가는 열차의 표를 끊고, 마침내 열차에 올라탔을 때 열차 안에서 미래의 자신과 사랑하는 너와 우리의 아이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기차의 창밖에는 푸른 초목들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도착한 이 거리. 만나기로 한 노란색 꽃밭. 그곳에서는 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나는 네가 무슨 죄인이냐며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너를 끌어 안았다. 너는 혼란스럽기만 해서,
"나는, 너를..."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네 입술을 막듯이 올리며, "됐어. 우리는 앞으로도 잘할 거고, 잘 될 거고, 행복할 거야. 물론, 지금도. 내가 장담해. "라고 말하니 너는 너답지 않게 곧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했다.
*
"그래서 죽은 아내 분과 만나셨다고요."
"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비의 계절과 함께 나타나 비의 계절과 함께 돌아간다니 마치 마법 같은 이야기네요."
"네. 하지만 진짜로 그녀를 만났어요."
"그렇군요."
남자는 주치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말했다. 주치의는 그에 대한 감상을 들려주었다.
"저는 의사니까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당신을 믿고 있습니다."
"네, 언제나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죠."
"그래요. 아, 그나저나 아드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그 아이는 늘 건강하죠."
"그렇군요."
"그럼, 안녕히."
"네."
남자는 주치와의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
"아빠, 일어나요. 밥 다 됐어요."
"그래, 오늘 밥은 뭐니?"
"아빠가 좋아하시는 게살 볶음밥이요."
"그렇니? 오늘이 네 생일인데 미안하네."
"큰일도 아닌 걸요."
부자의 대화는 다정다감해보였다. 그런 와중에 초인종 소리가 집안에 울려퍼졌다. 소년은 "네!" 하고 현관문 쪽으로 나갔다. 문을 여니 연륜이 상당히 짙어보이는 노인이 서 있었다. 그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올해 우리 가게가 문을 닫아. 그래도 네 엄마의 마지막 부탁은 들어줘야 하지 않겠니? 자, 이건 네 엄마의 마지막 선물이다."
소년은 익숙한 듯이 반응했다.
"네. 언제나 고마워요, 점장님."
"그래. 나는 슬슬 돌아가보도록 하마. 생일 축하한다."
점장과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욕실 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혹시 내 칫솔 못 봤니?"
"거기 선반 위에 있잖아요! 그렇게나 말씀드렸는데..."
소년은 건네받은 케이크를 식탁 위에 올려다 놓고, 남자가 있는 욕실로 달려갔다.
케이크 박스 위에는 편지가 놓여져 있었는데, 편지 봉투에는 '엄마가 아들에게'라고 쓰여져 있었다. 거실과 부엌 뒤에 있는 마당에는 8월의 노오란 꽃이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망울져 있었다. 여름의 구름은 꽃을 피우듯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매미의 울음 소리가 들려 왔다. 잠자리는 팔자 비행을 하며 8월의 비스비를 지휘하는 듯한 모양으로 날았다.
*
소년은 홀로 10년 전 추억이 깃든 그 장소로 갔다. 소년은 초목들이 둘러싸인 터널 속에서 10년 전, 여덟 살의 자신이 남자와 여자의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어렴풋이 눈앞에 그려졌다. 정말로 그곳에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엄마, 아빠" 하고 어린 아이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