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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다

사랑에서는 감정만이 다가 아니다. 이성도 중요한 법.

by 한월

그가 더욱 더 멀리 떠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슬펐다. 예상하고 있었기에 꽤 오래전부터 슬퍼해왔고, 지금은 덜 슬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내게 와닿은 것 같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엄마와 긴 대화를 나누면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게 정확할까. 불과 몇 분 전이지만 나는 어렸었다. 대화가 끝난 뒤에는 내가 성장한 게 느껴졌다. 진정한 어른으로 한 발자국 나아간 것 같아서 나는 지금 기분이 매우 좋다. 고민과 번뇌를 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그는 얼마나 절망적일지 생각했을 때 박장대소를 했다. 이런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잠시, 그에게서 연락이 오는 날에는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 됐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며칠, 몇 주 동안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나는 연락이 끊겼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험을 대비해 공부를 할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나는 그에게서 직접 소식을 들은 게 아니다. 내가 찾아볼 수 있고, 궁금하니까 먼저 찾아본 것뿐이다. 찾아보겠다고 한 건 나의 실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알게 되면 그에게 아는 척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게 예의에서 벗어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소식을 듣고, 체념한 듯 “알고 있었어”라고 말하는 건 좋지 않은 일이라고. 그래서 그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나는 무념무상으로 조용히 지내기로 했다. 만약 연락이 오면 나의 아쉽고 슬픈 감정은 빼고, 아쉽다며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듯이 수용하고 무작정 공감만 해주면 된다. 그러나 며칠, 몇 주가 지나서 이미 멀리 간 그곳에서 그제서야 그 소식을 전하면,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무척이나 분할 것 같다. 왜 이제서야 말하냐고 그를 탓하고 싶어질 것 같다. 하지만 무념무상. 나는 그저 “그랬구나. 많이 힘들겠다.”라는 한마디만 하면 끝이다. 그러고 나서 그쪽에서 면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면회를 하러 가지 못한다는 말을 굳이 돌려서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하기도 전에 오지 말라고 말할 사람이지만. 자신이 직접 갈 거라며 조금만 참으라고 말할 사람이라는 걸 안다. 연락이 당분간 뜸해질 거라는 것도 안다. 그쪽 사정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내가 그에게 말했던 것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면 되는 것이다. 순종과 다르다. 나는 이것조차 답답하고 막연할 것 같아서 나대로 꽤 고생할 것 같다. 그에게서 언제 연락이 오고, 어떤 말을 할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전부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서 지루해졌다. 지쳐버렸다. 그쪽에서부터 잘 지내고 싶다고 말하니 의리나 정으로 기다릴 수 있는 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에게서 연락이 뜸해지더라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편지를 보낼 것이라 생각한다. 다 이해한다고는 하더라도 사실 괜찮지 않다. 진짜로 사랑하고 나를 붙잡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락을 하고 말테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핑계다. 1년 동안이라도 사귀었으니 안다. 그는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것을 핑계라고 확실하게 정의하고 싶다. 이런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정말 실망일 테지만 그때에는 내가 먼저 작별 인사를 해야지. 내게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말 하고 싶은 말일 테니까. 그도 그렇게 말했었다. 나의 행복을 위해 나를 놓아줄 수도 있다는 말을 한 것부터가 그, 자신도 나에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의 말을 좀 더 들어봐야 알겠지만. 보통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맥이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뭐 어떤가. 그래도 모든 것은 지나간다. 자연의 흐름대로 살아가자. 사회와 현실을 받아들이되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그걸 밑거름으로 삼아 성장하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가다 보면 매순간이 성장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덕분에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는 걸 그에게 고맙다며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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