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8일 기록에 대한 회신
2025/02/28 기록에 대한 회신, 이 날은 하루 종일 피곤했었네요. 바로 당신의 곁에 있었으면 안아주며 위로라도 해줬을 텐데. 당신의 일기장에 적힌 말을 보고, 대학에 있을 때는 맨날 만나서 이리 저리로 가보고, 여러 가게에 가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넉살 좋게 장난을 쳤던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이제 곧 3월이네요. 머지 않아 대학에서의 생활을 시작할 때가 다가왔어요. 이제 당신은 없겠지만, 또 잠깐 동안은 외로울 것이고 수백, 수천 번의 눈물을 흘릴 테지만 이제 과거만을 살지 않겠어요. 당신에게 배울 점 중 하나였는데.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는 것. 언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신뢰할 수 없는 사람 중에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고.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잠시 동안 작년의 모든 일들을 잊고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는 날이었어요. 당신은 다음 날을 기다렸어요.
그리고 이 일기를 쓰는 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니 당신을 쓰다듬어 주며 고맙다고,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 작은 메모장에 당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일기가 이제는 내 손에 있네요. 몇 번을 돌려보며 그날의 당신의 말에 답장을 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항상 훈련과 노동을 하며 꾸준히 일기를 작성하는 걸 병행하는 모습을 떠올리니까 자신은 당신처럼 열심히 살지 못한 것 같아요. 나를 위해서 매번 일주일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던 당신을 보니까 더욱 선명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뭐, 아무렴 좋은 걸까요.
그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친해졌다고 하니까 역시 당신은 친화력이나 사회력이 좋으니까 그런 거겠죠. 역시 당신은 어딜 가든지 빛나고 있어요. 인복이 별로 좋지 않은 나에게는 어딜 가든지 만만하고 음침한 사람이에요. 전부 내 잘못이지만. 잘못은 아니더라도 자업자득이죠. 인간 관계에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낙오자. 그래서 늘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어. 너무 괴로워. 그러면서 늘 죽음을 기도했어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당신에게는 역시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어요. 이런 생각이나 말버릇도 인간 관계를 망쳐버린 것 중에 하나죠. 그래서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혼자,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고 싶어요. 당신의 품안에서 죽는 건 상상도 하기 싫어요. 나의 시신을 찾지 못해서 장례도 치르지 못할 정도로 미지의 공간에서 죽었으면 해요. 당신도, 부모님도 그 누구도 사라진 나를 찾지 않았으면 해요. 나는 그대로 원래부터 없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나를 잊어버려 줬으면 해요. 미안해요. 너무 힘들었나봐요.
만약 당신이 나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거절할 것 같아요. 온전하지 않고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병자인 나에게 결혼이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일은 할 수 없어요. 만약 당신과 결혼한다면 행복하겠지만 그 행복 속에서도 나는 낙인을 찍히고 싶을 것 같아요. 당신이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거나 이미 저질렀다면 당신에게는 큰 트라우마와 실망감, 절망감을 안겨주겠죠. 이미 약을 여러 개 먹고 있는 것도 당신이나 먼 미래에는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아파서 약을 먹는 것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서로의 미래를 위해서 그런 일은 없도록 해요. 언젠가 우리도 이별을 하게 되겠죠. 그게 언제라도 늘 각오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단 내가 사라지기 전에 당신을 기다려봐요. 기다린다고 약속했으니 약속은 꼭 지켜야 돼요.
당신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그 미래도 늘 걱정이에요. 우스갯소리를 하나 더 하자면 당신을 닮은 아이를 낳아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내 손, 팔에 있는 흉터나 약을 먹고 있는 게 언제나 마음에 걸립니다. 당신은 그런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불행 중 다행인 걸까요. 하지만 여자로서, 어머니가 되는 경험을 꼭 해보고 싶은 내 마음을 당신은 알기나 할까요? 여자로서의 모성애를 가지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 누가 사랑하는데 그런 미래를 꿈꾸지 않을까요. 당신은 분명 모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