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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단결 : 그해 5월 27일

by 스마일한문샘

저의 첫 담임반은 고2 문과 여학생 학급입니다. 교직 5년차에 만난 아이들이라 더 반갑고 애틋한데, 나하나 다르고 개성 넘치는 44명 마음 맞추려니 1년 내내 바쁩니다. 파란(?) 많던 우리 반이 모처럼 마음 모은 날이 있습니다. 16년 전 5월, 반짝이는 하루하루.


"저희들이 선생님께 첫 담임 반 제자들이니 다 같이 축하해 드리러 가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비상, 비상!

"결혼식 관련 학부모님 소견서 나눠 줄 거니까 부모님 사인 받아 5월 3일까지 가져와라. 부모님 허락 받고 그거 가져온 사람만 간다."(이렇게 하면 안 갈 수도 있겠지......)

(다같이) "네~~~!!!"


그렇게 우리 반의 가장 큰 파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천에서 부산까지 결혼 축가 프로젝트! 점심시간 아껴 연습하는 아이들이 대견하면서도 먼 길 오갈 생각하니 5월 내내 긴장, 또 긴장합니다. 결혼 전날까지 곳곳에서 일 터져 그저 탈 없이 즐겁게 다녀오기만을 빌 뿐.


5월 27일, 반장의 전화.

"애들 모두 6시 50분까지 왔구요, ㅇㅇ이랑 ㅇㅇ이는 아파서 못 온대요."

그렇게 지각 많던 아이들이...... 그러나 비 오는 휴무 토요일, "차 밀려요." "늦을 것 같아요." 1시 30분 예식에 하객들은 속속 오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가물가물합니다.


"다음은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가 순서가 있겠습니다."

목사님 말씀에 뒤돌아 본 순간, 흰 블라우스에 까만 조끼와 치마 입고 자주색 넥타이 맨 아이들이 어른어른.

"선생님 너무 예뻐요~"

"언제 왔어? 점심은 먹었어?"

"좀전에 왔어요."

"차가 엄청 밀렸어요."

"연습도 못 해서 걱정돼요."

후다닥 줄 맞춰 노래하는 아이들......


사진 찍으면서 아이들 얼굴을 살짝살짝 봤습니다. 화장 안 하거나 가볍게 한 얼굴, 고데기 안 쓴 생머리, 단정한 교복. 아이들과 교회 분들 배웅하러 1호차에 갔더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시간 관계상 식장에서 못했다는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를 버스 안에서 들을 줄이야.


밤 10시쯤 문자가 하나둘 날아옵니다.

"정말 저 울 뻔했어요.ㅜㅜ 선생님, 축가가 엉망이었지만, 애들 모두 열심히 불렀어요."

"선생님 저 도착했어요.^^ 좋은 밤 보내세요. ㅋㅋㅋ"

속 끓일 때 많았지만 2006년 5월 27일에는 모두가 한 마음이던 2학년 4반. 아이들이 책으로 만들어 준 편지 읽다 '대동단결(大同團結)' 네 글자를 가만히 그립니다.


* 대동단결(大同團結) : 여러 집단이나 사람이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크게 한 덩어리로 뭉친다는 뜻입니다.

착한 ㅇㅇ 편지. 다른 아이 글도 아껴 읽습니다. (200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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