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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글루에서 사는 느낌

'곰이 왜 동면에 드는지 이유를 알아버렸다.'

by 한나Kim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겨울은 한국에 비해서는 따뜻한 편이다. 새벽에는 2~3도, 오후에는 8~13도 정도. 물론 아주 추울 때는 새벽에 영하 3도까지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꽤 드물다. 그러나 이곳이 섬나라인 만큼 강한 바람이 불고, 추적추적한 습기가 많다. 그래서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한국이라면 이런 날씨야 우습겠지만 이곳은 다르다. 왜냐하면 집 안이 너무도 춥기 때문이다. 온돌이 없기에 바닥에서 얼음장 같은 냉기가 올라온다. 게다가 지진이 많은 지역이라 집을 지을 때 흔들림에 유연하도록 만들어서인지 난방기를 아무리 틀어도 집이 열을 머금고 있지 않고, 모두 밖으로 내뿜는 느낌이다. 때문에 밖에서 바람과 습기에 젖어 들어온 몸을 녹일 수 있는 온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낮부터 잠이 들기 전까지는 온풍기를 켜서 집안을 따뜻하게 한다. 그러나 자기 전에는 무조건 꺼야 한다. 전기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아껴 쓴다고 해도 한 달에 최소 300달러(25만 원) 이상은 나오는 것 같다. 그렇게 자기 전에 온풍기를 끔과 동시에 집안의 따뜻한 공기는 사라진다.


...


1년만 계획하고 온 뉴질랜드이기에 우리는 이불 대신에 캠핑에도 쓸 수 있는 침낭을 사용하고 있다. 요하네스가 얼마나 좋은 침낭을 사 왔는지, 일단 침낭에 들어가 있으면 모든 추위가 완벽하게 차단된다. 방 안의 차가운 공기가 얼굴과 폐만 강타할 뿐이다.


희한한 것은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침낭에서 자는 내가 더욱 깊은 수면에 빠진다는 것이다. 나는 잠귀가 밝고, 수면 중에 예민한 편이라 작은 소리에도 잘 깨서, 다시 잠드는 것이 힘든 사람이었다.


그런데 겨울이 되어 차가운 공기와 함께 침낭에서 잠이 드니, 수면의 질이 굉장히 높아졌다. 그리고 잠을 깊게 자고 일어나니 몸이 점점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다.


요즘에는 겨울은 겨울답게 춥게 사는 것이 인간이 원초적으로 사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까지 다. 붙여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들어가는 곰의 습성이 이해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ㅎ


'저도 몰랐어요. 겨울에 이리 잠이 쏟아지는지..'



그렇게 생활하다, 영하였던 새벽의 어느 날이었다.


깜깜한 새벽에 주섬주섬 침낭 밖으로 나오는 요하네스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자크를 내리면서 흐물흐물 기어 나오는 그가 어둠 속에서 두꺼운 플리스 잠바를 챙겨 입는다. 집 안에 있는 화장실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잠바를 입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웃겼다.


"지금 화장실 가려고 잠바 입는 거야?ㅎㅎㅎ"

"너무 추워.. 아이고 미치겠다... "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그가 다시 흐물흐물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면서 뭔가를 또 주섬주섬 준비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그의 모습이 아주 어슴프레 보일 뿐이다. 그의 모습에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싶어 손을 내밀어 얼굴을 만져보니...


어머나 -_-


눈, 코, 입, 귀를 모두 가린채 잠을 청하는 요하네스


"집 안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거야? 깔깔깔"

"미치겠네.. 아우 미치겠다... 추워 ㅠ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차가운 공기와 함께 따뜻한 침낭에서 잠을 자면, 수면의 질이 엄청 높아진다. 다만 온도조절능력이 떨어지고, 코가 높은 요하네스는 귀와 코가 너무 차가워 괴로울 뿐이다.


코도 낮고 온도조절능력이 최상위 급인 나 같은 한국인은 몸만 따뜻하다면야 얼굴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뭐, 끄덕 없지 ㅎㅎ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여름에는 영상 35도요, 겨울에는 영하 20도에서 살아가는 강한 민족이 아니던가. 수면에 문제가 있는 분들이 있다면 추운 공기와 함께 침낭 속에서 자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처럼 자연스레 곰의 겨울잠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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