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목요일에 입원을 하자마자, 뇌혈관 및 뇌신경 MRI를 신청했다. 입원 후 신청하면 금방 될 줄 알았는데, 밀린 환자가 너무 많아 최소 5일은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렇게 MRI를 찍기 위한 나의 입원기가 시작된다.. -_-
안검하수 현상이 나타난 오른쪽 눈 빼고는 너무나 멀쩡한 내 상태였다. 뇌와 관련이 많은 신경과라 그런지 병실을 지키고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80대였다. 젊은 분이 62세. 나만 40대 초반.. 아픈 데에는 나이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 선생님이 밤마다 이곳저곳을 검사하러 오셔서 중간중간 깨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잠도 잘 잤고, 병원 밥은 또 왜 이렇게 맛있는지, 아침 점심 저녁을 뚝딱뚝딱 깨끗하게 비웠더랬다. 그래서 지금 2kg가 찐 상태다.ㅠ_ㅠ 또 남편과 아이들 없이 혼자 있고 싶었는데, 어찌 보면 이 순간이 혼자서 힐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원한 첫 주말 오전에 남편과 아이들이 나를 보기 위해 병원 로비로 찾아왔다. 노란색 프리지아 꽃을 가지고 왔는데, 그걸 보고 좋기보다는 참 난감했다. '아니 요즘에 병원에 올 때 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나 -_-' 알고 보니 로버트가 그런 사람이었다. 입원할 때 꼭 꽃이 있어야 한단다. 근데 이 꽃을 꽂아 둘 물병도 없거니와, 이걸 놓는다고 해도 얼마나 거추장스러울 것인지.. '아우 귀찮아!'라는 생각이 들며 나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반면 그분은 혼자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싱글싱글. 응 안 맞아 -_-
사랑이 듬뿍 담긴 꽃을 버릴 수도 없고 해서, 내 침대 걸이 위에 그냥 걸어두었다. 귀찮다~ 생각하며 걸어놓은 작은 노란 꽃을 보고 있으니 꽃의 은은한 향기와 싱그러움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아이래서입원실에꽃을 주는 거구나..' 사람은 이렇게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MRI를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검사를 했다. '중증근무력증 검사', '안구운동 검사', '뇌척수액 검사', '이비인후과용 엑스레이', '피검사'. MRI를 찍기 전까지 했던 많은 검사들의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가장 걱정했던 중증근무력증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고, 뇌척수액도 아주 깨끗했다. 안구운동에서도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혹시 모를 축농증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또한 갑상선 관련 피검사도 괜찮았고, 마지막으로 혈액암 관련 피검사에서도 무이상으로 나왔다.
검사를 받으면 받을수록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의사 선생님도 안구운동 및 중증근무력증 검사에서 이상이 없자 조금씩 안심하기 시작하셨다. 아무래도 뇌신경이나 뇌혈관과는 상관이 없을 확률이 높다는 말씀도 전해주셨다. 그리고 입원한 지 5일 후인 1월 24일 밤 11시에 조영제를 투여한 MRI를 찍을 수 있었다. 좁디 좀은 곳에 들어가, 눈알도 굴리면 안 되는 자세로 30분간 가만히 있는다는 게 이렇게 곤욕스러운지 처음 알았다. 거기에 귓가에서 들리는 소리는 왜 이리 불쾌하고 무서운지, 과연 이런 검사를 80대 노인분들이 어찌 버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인 듯하다.
그다음 날, MRI 소견도 모두 깨끗했다. 신경 마비도 없었고, 뇌혈관도 깨끗했다. 다만 눈꺼풀 조직에서 감염이 많이 보인다며 5일간 고용량 스테로이드 정맥주사를 권하셨다. 그래서 그날부터 매일 오전 9시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화수목금토 딱 5일 동안이다.
말만 들어도 부작용이 느껴지는 스테로이드 주사. 그것도 고용량으로 놓는 정맥 주사라니.. 겁이 났지만, 나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다. 주사를 두 번 맞은 이틀 간은 몸에 아무런 증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지럽지도 않고, 메슥거림도 없었으며 그냥 밤에 불면증이 좀 생겼다는 정도? 그러나 셋째 날부터는 새벽에 속 쓰림이 너무 심해서 일어났고, 그날 아침밥을 먹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토할 것 같은 느낌, 멍멍한 머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속 쓰림 방지 약을 더 처방해 주셨다. 잠이 안 온다고 하니, 바로 수면제를 주셨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 상황을 약으로 다스리는 양의학이 나한테는 살짝 거부감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퇴원할 때 안검하수는 많이 좋아졌지만,약에 취해 기력이 하나도 없는 상태임이 어찌 보면 당연한 듯하다.
스테로이드는 신비의 명약이 아니던가. 떠질 것 같지 않았던 나의 눈은 스테로이드를 두 번 맞자 조금씩 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원할 때는 2/3 정도까지 커진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스테로이드 때문인지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속으로 감사하다를 수백 번, 수천번 읊은 듯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스트레스에 강한 편이라, 혼자서 잘 참고 이기는 편이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스트레스를 이기기보다는 건강하게 푸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걷기와 명상, 그리고 스트레칭을 더 규칙적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주 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