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검하수'로 인한 장기 입원 (3)
'드라마로 가득한 내 인생, 그래서 재미있는 내 인생.'
두 달 전쯤에 꿈을 꾸었다. 키가 2.5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큰 아저씨가 하얀색 면티에 편안한 검은색 바지와 마이를 입고 나와서 나에게 막 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꿈.
"너 스마트폰이랑 컴퓨터 이렇게 하루 종일 보면 눈이 안 보일 수 있어. 이제 그만 봐! 마지막 경고야, 더 이상 보지 마" 이러면서 약간은 고압적으로, 그렇지만 나쁜 사람 같은 느낌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나를 막 혼냈다. 꿈이 어찌나 생생한지, 일어나마 마자 둥이들한테 이야기를 했다.
"얘들아 엄마 꿈에 도깨비가 나왔어. 얼굴은 그냥 사람처럼 생겼는데, 우리보다 훨씬 크고 얼굴 골격도, 또 손도 크고 그렇더라. 그 아저씨가 엄마한테 스마트폰 그만 보라고 막 혼냈어."
대수롭지 않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던 내 꿈이, 눈이 이렇게 되자 그냥 꿈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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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목요일은 당연히 입원이 안될 거라고 생각해 그날 아침 평소 스케줄을 따라가고 있었다. 근데 오전 9시경에 전화가 왔다. "오늘 4시에 입원하실 수 있습니다. 원래 안 되는 거였는데, 뇌 쪽 질환 일지 몰라서 노력을 했습니다. 입원 준비물 다 챙기셔서 4시까지 입원 수속 진행해 주세요."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아리송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고, 서둘러 아이들이 저녁에 먹을 카레라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왠지 이불빨래도 해놔야 할 거 같아 이불도 빨고, 애들 옷도 한 번 더 빨고, 집 청소도 마쳤다. 별일 없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그냥 했다. 친정 엄마한테 아이들을 맡기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로비에 로버트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담담하고 씩씩하게 입원 수속을 마치고, 나는 입원실로, 보호자인 로버트는 집으로 갔다. 심각한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상주 보호자가 아니면 입원실을 방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원실에 짐을 풀고 멍~ 하니 있을 때 고등 동창 용이한테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다. '허허 평소에는 연락도 안 하던 친구가 딱 이때 연락이 오는구나. 이 친구 판 깔아야겠어~'라며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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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게 내 상황을 설명하자 그녀가 낄낄 거리며 말했다.
"너의 인생은 늘 드라마의 연속이었어. 20년 12월 아들 고환 때문에도 난리였는데 결국 다 괜찮았잖아. 애 낳을 때 죽을 뻔했지만 운 좋게 살았고. 지금도 그래. 너는 결국엔 다 괜찮아질 거야. 그래서 나는 너 걱정 1도 안 한다."
유쾌하게 깔깔 거리며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위안을 받았다. 그래. 내 인생은 늘 드라마였지. 덕분에 책으로 써도 다 풀 수 없는 썰이 넘쳐나잖아. 별일이야 있겠어.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보고, 결과를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뭐. 그리고 늘 그랬듯 나의 스토리에 또 다른 스토리가 입힐 거야. 나는 늘 그래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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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작은 사건들 마다 큰 의미를 부여해 자신의 인생이 안 좋은 사연으로 둘러싸였다며 소중한 인생을 부정적으로 단정 짓는 이. 반면 큰 사건들 조차 웃음으로 승화시켜, 인생을 빛나게 하는 요소로 만들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삶을 알록달록하게 꾸미는 재주가 있는 이.
이왕 사는 거 나는 후자로 살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뿐인 거니까. 짧고 소중한 인생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살아야지. 그리고 천국에 있을지, 지옥에 있을지는 내가, 다시 말해 나의 마음이 선택하는 거니까, 슬프거나 아프더라도 천국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지 다짐한다.
모두가 행복하길. 그리고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음을 잊지 말자. 쓰디쓴 인생이라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