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나온 지 이제 2주 하고 3일이 흐른 듯하다. 나의 병명은 '안와 염증'이고, 그 염증이 감염으로 생긴 게 아니므로, '비감염성(면역성) 안와 염증'으로 명명되었다. 다시 말하면 '특발성 안와 염증'으로 불릴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자가면역질환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스테로이드 약을 처방하며, 결과는 대부분 좋다고 한다. 만약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으면서도 염증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에는 조직검사를 권장하기도 한다고.
우선 병원에서 입원하며 5일간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정맥 주사를 맞은 후, 현재 스테로이드 경구약을 약하게 먹고 있는 나는, 첫 10일은 괜찮았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부터, 밤에 가끔씩 눈의 욱신거림이 느껴진다. 나의 몸상태에 따라 다른 것 같은데,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고, 또 어떤 날은 '아 내 오른쪽에 눈알이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정도. 특히 핸드폰을 많이 한 날은 눈이 더욱 피곤한 것 같다. 그러나 시력이나 안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계속 관찰하다가 증상이 지속된다 싶으면 다시 한번 응급실을 찾아가 검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안검하수 증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정상의 눈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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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의 9박 10일 동안 사실 많은 생각을 했다. 인생에 대해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내 옆을 지나간 몇몇의 환자들을 통해 인간은 필연적으로 늙는구나를 경험하며, '마지막 순간이 어때야 성공한 삶일까'도 생각해본 듯하다.
우선, 내가 만났던 환자들이 대부분 80대였으므로 나의 80대는 어떨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몸은 병들기 마련이고, 그럼 아프기 마련이고, 또 병원에 입원하기 마련 아닌가. 그분들 중에서 며느리가 돌봐주는 이도 있었고, 딸이 돌봐주는 분도 있었고, 미혼이셨던 분은 가끔 친동생이 돌봐줬다. 그들을 보며 인생의 끝에 아무도 나를 찾는 이가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힘이 있고 베풀 수 있을 때 주위 사람들한테 잘해야 한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 또는 가족이라던가, 또는 며느리라던가 말이다. '인생사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젊을 때 보다 나이가 들어 서러울 때 제일 먼저 느껴지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찌 보면 굉장히 사실적으로 잔인한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혼이었던 할머니는 인생이 쉽지 않았나 보다. 밤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입원 병동 전체를 힘들게 했다. 무슨 말이든지 부정적이었고, 공격적이었다. 또 다른 할머님은 연탄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입원하셨는데, 처음에는 말씀도 하시고, 소변을 보실 때 혼자 일어나려 하셨었다. 그런데 간호사 및 며느리가 소변을 누시다가 할머님이 쓰러지실까 싶어 기저귀에 누게 하셨다. 반복되는 기저귀 생활 때문이었을까, 3~4일이 지나자 그분은 삶의 의욕을 놓은 듯했다. 말씀도 없으셨고, 대답도 하지 않으셨으며 나중에는 삼키지도 못하셨다. 물론 교수님의 말씀을 귀동냥으로 들었을 때, 일산화탄소에 중독이 되면 상태가 조금씩 나빠지다가, 어느 순간 급격하게 바닥을 친다고 한다.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그러고 나서 서서히 좋아진다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배변활동을 기저귀에 하고, 간호사와 며느리 앞에서 그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참담함의 반복이 인생을 살고자 하는 그분의 의지를 꺾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그들도 모두 나와 같은 젊음이 있었으리라. 모두들 치열하게 살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며 지금의 나이가 됐겠지만, 결국 그 끝은 아픔과 죽음뿐이라는 사실이 어찌 보면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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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가 주고 간 꽃을 달고, 병원 곳곳을 누비며 열심히 산책을 했더랬다. 그리고 퇴원할 때 그 싱그러웠던 꽃은 빠싹 말라있었다. 마른 꽃을 보고 있자니, 생생했을 때도 예뻤지만 건조된 이 모습도 이쁘구나 싶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싱그럽고 향기로웠던 어린 시절도 이쁘지만, 빠싹 마른 노인의 모습도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울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