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밴드가 비주류에서 주류로 바뀌어가면,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기 위하여 이동했다. 그럴 때의 이동은 안목의 발전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것이었다. 예전의 안목을 버리는 것을 담보한 과시였다. 자신이 좋아하던 세계를 기꺼이 버리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 위해, 결단력 있게 옮겨가는 아이들에게는 남들이 함께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좋아하는 일이 애호의 즐거움에 속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좋아할까 봐 남몰래 혼자서 좋아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좋아하는 것에 관하여 어떤 식으로든 발설했고 혼자서만 좋아하던 비밀한 것들은 누설되자마자 모두가 좋아하는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p.47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산문집
한 날 한 사람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거듭해서 까이는 불상사를 당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무심코 한 말인 건지도 모르겠으나 그분의 뉘앙스 속에는 자신의 안목의 자부심과 나의 인사이트에 대해 낮춰보는 우월감이 묘하게 깔려있는 것만 같았다. 존중받지 못한 마음에 약간 쓸쓸했고 내게 취향은 존중과 개성의 문제이지 등급의 영역은 아니었으므로 뭔가 더 말을 이어가기가 애매했다.
그럼에도 애호의 세계 속에는 묘한 경쟁이 있어서 좋아하는 것은 좋아서 좋아하는 것이지 누가 좋아하기 때문에 나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닌 걸 분명히 하고 싶은 마음은 사람이 가진 본성인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 (내 기준에선) 말할 때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편하게 좋아한다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어가는 것이 한편으론 쓸쓸하기도 하고 위화감을 주지도 받지도 않고 순수하게 같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 만나면 좀 (많이) 흥분하고 말이 많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반갑고 편하니까. 애호의 세계는 뭔가 조심스럽고 복잡하고 고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