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에 작업실을 정리하고 십오 분 걸어 집에 온다. 저녁을 먹고 일곱 시 반에 운동을 나간다. 리디북스 오디오로 책을 들으며 걷는다. 반복되는 저녁 일상.
더 이상 열 시까지 사무실에 있지도 않고, 밤을 새우며 영상을 만들지도 않고, 관계로 인해 영향받으며 조바심 내지도 않는다.
안온한 평화를 얻는데 꼬박 일 년이 걸렸고, 내가 원했던 단 한 가지는 지루하고 안온한 일상이 반복되는 날들이었다. 일상을 사랑하고 마음을 주고받고, 잘 보여야 되는 사람들 말고, 이미 조건 없이 잘 봐줘서 고마운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며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것. 놓쳐서 허탈해지는 것들에 씁쓸해지기보다 남아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 것.
전쟁처럼 일을 하고, 사람이 안 견뎌져 마음이 닳아 상처 받고, 무례한 사람에게 똑같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되는 날들을 견디며 살아온 시간들,
그리고 간절히 바라던 것들이 번번이 문 앞에서 좌절되던 일들을 여러 번 겪으며 쌓아온 내 기다림의 역사, 그 시간들이 지나가며 내가 찾아가고 있는 것들은 안온하고 소소하고 그래서 소중한 일상이었다.
"나만의 뿌리를 내릴 곳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쟁취한 것은 지루하고도 사랑스러운 일상이었다."는 윤진서 님의 꼭지를 읽으며 누군가의 콜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준비만 하고 살았던 시간, 파티 같은 특별함이 계속되길 바랐던 그녀의 20대, 대본을 기다리던 날들과 그 안의 뿌리를 내릴 곳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쟁취한 것은 지루하고도 사랑스러운 일상이었다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 같았다.
이십 대와 삼십 대 중반은 그렇게 살아야 했던 시간이지 싶다. 그렇게 달려온 지점이 바로 여기, 손에 잡힌 건 아무것도 없고 여전히 내 기다림의 역사는 쌓여가는 곳,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체화된 소소한 것들은 나약하지 않다. 오기까지 많이 애쓰고, 좌절하고, 견디고, 의심하고, 다시 나아가고, 또 좌절하던 지난한 과정들을 반복하며 다져온 터전 위에서 쌓아가는 거니까.
이제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지 않고, 갈등과 오해를 억지로 풀기 위해 더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며, 어떤 실망감에 관계가 흔들려도 그 사람과의 일을 회피하진 않는다. 퇴근, 퇴사, 퇴짜, 거절, 성사, 만남 모든 것이 그저 일상일 뿐이다.
나는 더 이상 '단단함이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함은 하루에도 수십 번 흔들리고,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면 힘을 빼야 한다는 걸 아는 것, 그게 쉬이 될 턱이 없으니 지나갈 때까지 힘을 빼며 일상을 잘 유지하는 루틴을 지켜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새로운 순간을 발견한다. 발견된 새로운 순간을 느끼고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할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아는 '삶'이리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지 않았다면 삶의 의미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파티 같은 특별함이 계속되길 바랐던 20대의 나,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 대본을 기다리던 날들, 그 안의 불안에서 나만의 뿌리를 내릴 곳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쟁취한 것은 지루하고도 사랑스러운 일상이었다. 나는 어쩌면 그 '누구'로서가 아닌, 단지 한 생명으로서의 의미가 절실하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비로소 나만의 일상을 찾았고, 일상이 이어지는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알던 환각 따위는 없었다. 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