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내 속에 들어오면 나는 불가피한 사람이 된다
이승우 선생님의 사랑의 생애
끝이 안 좋으면 앞에서 좋았던 기억들도
다 갖다 버리고 싶은 생각 들곤 했었는데
이승우 선생님 글 다시 읽으며
관계의 역할은 그것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스며드는 무언가는
그 시간 동안 나를 변화시켰다.
무언가가 변하면 그만큼 나는 자라 있었고
그렇게 자란 나를 찾아오는
또 다른 세계가 (의도치 않게) 나를 기다렸다.
사랑이 내 속에 들어오면 나는 불가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내 결핍 탓도 아니다.
우연히 시작되고 필연적으로 흘러간다.
그러는 동안 세월이 흐르고 나는 변한다.
나는 변하고 시간만 흘러가 버리는 것도 억울할 건 없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그 사랑의 역할일 것이다.
내 속에 들어와 나를 성장시키고 시간이 다하면 떠나가는 것.
선생님 글 읽으면 사랑은 정말 생애이고 역사 같다는 생각 든다.
그리고 목적지를 모르는 정거장 같아서
지도가 있다고 실수 없이 잘 가지지도 않는다.
한 사랑이 들어와서 나가는 생애 동안 내 안에 스며들고 변화시키는 무언가가
그 관계의 역할의 전부였을 수도 있다.
모르고 살아도 되는 경험들 많아도
모르지 않아서 단단해지는 일들.
폭과 깊이가 생긴만큼 좋은 인사이트로 세상을 마주하게 되니까.
그래서 공평한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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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존재가 우리의 내부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존재를 따라 살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순간 사랑은 문득 당신 속으로 들어오고, 그러면 당신은 도리 없이 사랑을 품은 자가 된다.
사랑과 함께 사랑을 따라 사는 자가 된다.
사랑이 시키고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사랑에 빠졌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
당신이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 사랑해도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는, 사랑의 초기에 반드시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연연할 일은 아니다.
숙주로서의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조건을 자격으로 간주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 조건이 기생체를 불렀다고 단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믿음은 없다.
어떤 경우에도 숙주가 기생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올 때 당신은 불가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와서 당신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랑이 들어오기 전에는 누구나 사랑할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랑했거나 사랑하고 있는 어떤 사람도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했거나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은총이나 구원이 그런 것처럼 사랑은 자격의 문제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p.12
사랑의 생애 | 이승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