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추는지 몰라." 빌이 말했다.
"출 수 있어." 내가 고집을 피웠다.
"아직도 늦지 않았어. 자, 여기까지 왔잖아. 맙소사, 그게 바로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였어.
이제야 알겠네. 바로 여기가 네가 춤을 출 곳이야."
나는 빌의 바로 앞에 앉아서 고개를 쳐들고 그를 바라봤다.
빌이 지금 하고 있는 일, 빌이라는 인간, 그리고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똑바로 목격하는 증인으로서 그를 바라봤다.
그곳, 세상의 끝에서 그는 끝이 없는 대낮에 춤을 췄고,
나는 그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닌 지금의 그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를 받아들이며 느껴진 그 힘은 나로 하여금 잠시나마,
그 힘을 내 안으로 돌려 나 자신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도록 했다.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그 부분은 언젠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오늘은 이미 할 일이 있었다. 오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눈 속에서 춤을 추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p.287
랩걸 (호프자런) | 알마
"이 소설 최고의 장면은 바로 여기다"라는 말을 책에 끄적였다.
손가락의 장애(로 표현된) 빌의 멍울은 그를 세상 속에 경계인으로 살게 했다.
과학자의 세계에서 여자라는 성별이 자런의 멍울이었던 것처럼.
각자가 가진 멍울은 세상과의 경계를 만들고
그것을 뚫고 사회 속에서 적응하는 것은 여전히 고단한 일이다.
세상의 끝에서 춤을 추는 빌을 바라보는 자런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녀는 말한다. 그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닌 그 자신으로 빌을 바라보고 있다고.
그녀는 '그를 받아들이며 느껴진 그 힘으로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고단하게 달려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남자는 춤을 추고 여자는 남자의 춤을 바라보며
기나긴 시간 자신을 묶어두고 있는 한계 앞에서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녀와 그는 나아갈 것이다.
나무처럼 뿌리내린 긴 시간이 그녀와 그에게 있었다.
이 장면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고 나는 내 몫이었던 일들과
내 몫이 아닌 일들의 경계 속에 서있는 나와 비로소 화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OdVj1iM8H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