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탕 (이승우) | 현대문학
캉탕은 이승우 선생님의 신작 소설이다.
대서양의 항구도시 캉탕에 세 인물이 모인다.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려 바다로 뛰어들었던
오디세우스의 선원 부테스,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하기 위해 제물이 된 심청,
모비딕을 잡기 위해 바다로 향했던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허브,
예언의 임무를 피해 배에 숨어들었다가 죄인으로 바다에 던져진 선지자 요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이야기들이 인물들의 서사와 얽히며 이 책은
이승우 선생님 특유의 중문으로
완성도 높은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가 떠나고 싶은 곳은 단 하나, 과거이다"
어린 시절 불우한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죄책감으로
이명증을 앓게 된 한중수,
어린 시절 푹 빠져 읽던 [모비딕]에 매료되어 포경호를 타고 흘러온 핍
젊은 시절 연인의 죽음을 경험했고, 세상의 종말을 원했던 선교사 타나엘.
과거로부터 숨고 싶고 떠나고 싶었던 세 남자가 캉탕으로 흘러온다.
캉탕은 익숙한 언어로부터 자기를 숨기기 위해 선택한 장소이다.
자신의 언어와 자신을 둘러싼 관계,
그리고 자신의 과거로부터 단절되고 싶어 그들이 선택한 장소이기도 하다.
"걸으면서 보고 쓸 것, 보려고 걷지 말 것,
쓸 것이 없으면 쓰지 말 것, 그저 걸을 것"
귀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 일상 생활이 힘들어진 한중수에게
친구인 정신과 의사 J가 처방해준 내용이다.
그는 자신의 삼촌 핍이 있는 캉탕으로 한중수를 보낸다.
그곳에서 글을 쓰고 자신에게 계속 보낼 것을 당부한다.
이 소설의 짝수 장은 한중수가 J에게 쓴 기록으로 이루어지며
이 책의 큰 흐름과도 연결 된다.
이 구성이 매우 흥미로운데 이것은 철학적 사유가 담긴 챕터와
소설의 전개가 담긴 챕터를 교차하는 방식이다.
이승우 선생님 소설 특유의 기법이기도 하다.
"일기는 자기를 향해 쓴 기도이고,
기도는 신을 향해 쓴 일기이다."
한중수는 타나엘에게,
타나엘은 한중수에게 서로의 사연을 고백하게 된다.
그들은 요나의 이야기처럼 모두 '신의 낯을 피해'
캉탕으로 흘러 들어온 죄인이었고
서로를 통해 자신의 죄와 직면하게 된다.
이 책은 말한다.
"일기는 자기를 향해 쓴 기도이고
기도는 신을 향해 쓴 일기이다."
그들은 들어줄 누군가가 있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연이 안전하게 비밀로 보장될 수 있을 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잘 모르기에 비밀이 누설 될 여지가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핍에게는 유혹자와 구원자가 동일했다"
한중수가 떠나온 이국의 땅 캉탕. 그곳엔 핍이 있었다.
머슴살이에서 탈출하기 위해 포경선을 탔던 핍은
풍랑을 만나 캉탕으로 흘러오게 되고
그곳에서 아내 타냐를 만나 정착한다.
이 소설은 핍을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려
바다로 뛰어들었던 오디세우스의 선원 부테스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핍"이 된다.
소설 모비딕에서 핍이라는 인물은 겁쟁이 흑인 소년이다.
모비딕에서 핍이 물에 빠졌을 때
그의 상사는 그를 구해주지 않고 떠난다.
나중에 본선이 그를 구출해주지만
구출 된 것은 육체일 뿐 영혼은 바다에서 익사했다고
이 소설의 화자인 이슈메일은 말한다.
작가는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때 그 무정하고 드넓은 바다에 빠져 익사한 것은 그의 육체이고
구출 된 것은 그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육체가 아니라 영혼만 살아서
이 세상의 갑판 위를 거닐고 있는 것이 아닐까." p.218
핍은 캉탕에서만 자신이 원하는 자아로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아내 타냐는 그에게 구원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병든 후 그는
이 곳에서 생기를 잃고 하루하루 연명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우리는 캉탕에서 이 세 사람의 감춰진 사연을 듣게 된다.
세상이 멸망하길 바라고 기다렸던 타나엘의 아픔을,
바다에 빠지면서 자신의 과거를 모두 버린 핍의 사연을,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죄책감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살아
귀에 사이렌 소리를 달고 살아야했던 한중수의 깊은 어둠을.
'[캉탕]은 자신의 과거를 향해,
죄의 근원을 향해 무한히 다가가는 이야기'라고
이 책은 소개한다.
캉탕의 바다는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그리하여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야기의 공간이다.
과거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사람들,
제물로 바쳐지고 또 구원이 있는 바다,
걷고 또 걷고 보고 쓰게 되는 사연들,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 때 고백할 수 있는 나의 허물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고백과 성찰]에 대해 생각했다.
이 소설은 글로 쓰는 것만이 쓰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도도, 타인을 향해 말로 내뱉는 것도 글이라고 말한다.
"일기는 자기를 향해 쓴 기도이고,
기도는 신을 향해 쓴 일기"라고 말한다.
죄와 죄의식, 구원과 초월은
이승우 선생님이 끊임없이 다루셨던 소재들이다.
이것은 삶의 본질과 맞닿아 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도 연결 된다.
그리고 홀로 자신의 사유를 풀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서로의 필기구가 되어줄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경청자였다.
그들의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고
그들은 연대없이 각자의 짐을 지고 가야했기 때문이다.
연대없는 비탄 속에 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의 삶의 장벽이 되는 어두운 부분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우리의 일상이 아닌, 언어도 환경도 낯선 곳에서
자신을 점검하고 싶다면
이 책 캉탕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론과 사연을 교차하며 소설을 엮어가는 작가.
신앙과 참회, 고전과 철학적 사유를 도구로
자신의 지향점을 탄탄하게 이야기하는 놀라운 작가.
나는 이승우 선생님과 동시대에 살며
계속 선생님의 새 글을 읽게 되는 게 정말 기쁘다.
이번 소설 역시, 나에겐 최고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nPHmrJ1EW6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