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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의 뉴욕일기 |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다음 역을 향해서

by 해나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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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라
내가 받은 상처의 깊이만큼 상대방이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는 건 아니다.
그런 공정함이었으면 상처는 봉합이 되었을 것이고 상처는 상처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별하며 배웠다.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만
이별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별 앞에 상대가 받을 아픔과 슬픔은 배제된다.
그 차이를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이별의 상처 앞에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래서
이별은 이별을 만든다.
그것이 종착역이 아니라 다음 역을 향한 정거장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의 가장 아름답고 생기 있던 것들이 녹진녹진 배어있던 이 곳에서 나는 허수경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

시인의 말도 시가 된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지금 이 순간 시인의 말을 이해한다.

_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다음 역을 향하여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허수경) | 문학과 지성사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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