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준비를 하던 날 기회가 찾아왔다
2년간 어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드디어 원하던 미국 대학원에 합격했고, 유치원 교사로 1년, 어학원 강사로 2년 일하며 모은 돈은 학비와 생활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해 준 부모님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출국 날, 친했던 친구들과 부모님이 함께 공항에 마중 나왔다.
나중에 엄마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그날, 네 뒷모습을 보는데… 괜히 마음이 쿵 내려앉더라.
이번 떠남은 그냥 짧은 여행이 아닐 것 같았어. 어쩌면 정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나는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설렘과 두려움을 안은 채 새로운 세상으로 향했다.
내가 유학을 떠난 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필라델피아였다.
처음 마주한 도시는 회색빛으로 가득했고, 그 차가운 분위기는 이곳에서의 삶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듯했다. 다행히도 캠퍼스는 따뜻했다. 학생들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고, 교정에는 젊은 에너지와 활기가 넘쳐흘렀다. 미국인 동기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은 모두 쟁쟁했다.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내 역량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졌고, 매일 스스로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비교할수록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도착한 지 한두 달이 지나도록 짐조차 제대로 풀지 못했다.
매일 밤, ‘학비를 환불받고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렇지만 매일 하루씩 미루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졸업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학교 생활에 적응이 되자 대학원 수업과 함께 초등교사 자격 과정을 병행했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인들과 같은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희망’이었는지, ‘무모한 용기’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라도 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주어진다면,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설령 그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한국으로 돌아가 내가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나누면 된다는 마음으로 매 수업에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 교실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고
결국 미국 초등교사 자격증은 물론, ESOL 교사, 중학교 수학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기적 같은 기회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말이다.
졸업 후, 현실은 더 거칠었다.
당시는 국제 금융위기의 시작되던 시기였고, 미국인들조차 취업이 쉽지 않았다.
외국인에게 취업 비자까지 지원해 주는 학교나 기관은 거의 없었다.
5월 졸업식 이후, 동기들은 하나둘 고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언니와 함께 살며 미국에 남아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8월 말까지 100곳이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주를 넘나들며 인터뷰를 다녔다.
하루하루가 간절함과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기다림은 점점 지침으로 바뀌었고, 희망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결국 나는 포기를 결심했다. 짐을 싸고, 항공권을 예약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던 때 이미 미국의 새로운 학기는 시작 준비가 한창이던 8월 말,
그날…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