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 Lee Feb 19. 2016

애견인의 소소한 고백

두 생명체가 내게 알려준 사실들

둘은 죽고 못 사는 사이다.

누워 있는 하늘이의 몸에 종종 귀를 갖다 댄다. 콩닥콩닥.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들숨과 날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내 무거운 머리는 살짝 들어야 한다. 역시, 사람이든 동물이든 잘 때가 가장 귀엽고 예쁘다. 자고 있을 땐 천사 같다. 아, 물론 깨어 있을 땐 종종 악마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하얀 말티즈와의 첫 만남은 무척 쑥쑥했다. 나는 애완동물을 키울 마음이 전혀 없었고, 순전히 아빠와 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데려 온 녀석이었으니까. 하늘이가 우리 집에 온 첫 날, 나는 하늘이를 본체만체했다. 그런데 글쎄, 이 녀석은 그런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아니, 화장실까지 쫓아와서 화를 냈다. 왜 자신을 반기지 않느냐는, 저돌적인 물음이었다. “왈! 왈!”


2년 뒤, 아빠는 다시 하늘이의 동생이 될 수컷 시츄를 한 마리 데려왔다. 그 아이의 이름은 뭉치. 시츄는 순하다더니, 역시 자기 형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이렇게 무난할 수가 없는 성격의 소유자...아니 소유견(?)이었으니까. 강아지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지금도 둘은 정말 많이 다르다. 


우수에 찬 눈빛.


이들과 10여 년을 동거하며 가장 놀라웠던 건,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들이었다. 밥을 먹으면 트림을 했다. 가끔 급하게 먹으면 체하기도 했고, 그럴 때면 바닥에 구토를 했다. 아픈 날은 힘이 하나도 없다. 대변을 시원하게 보면 기분이 몹시 좋아 소파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세리모니를 펼치고, 그러다 지치면 잠이 든다. 방귀도 끼고, 자면서 꿈을 격하게 꾸는지 잠꼬대까지 한다. 가끔 자기 잠꼬대에 놀라 잠을 깨곤 하는데, 그걸 발견하면 귀여워서 심장에 무리가 갈 지경이다.


그냥 그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럽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다.


생김새도 전혀 다르고, 두 발로 걷거나 말을 하지도 못하는데, ‘생명’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비슷하다. 그게 정말 신기했다. 이따금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한 생명 한 생명이 이렇게 경이롭고 사랑스러운 것이구나.’ 하고. 그 때부터였다.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이 지구에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구나. 같거나 다른 특징을 가진 무수한 수의 생명체가 이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구나. 다르다고 무시하거나 얕보거나, 없는 존재처럼 취급해선 안 되는 것이구나. 


하늘이와 뭉치가 내게 가르쳐 준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어느덧 둘은 각각 열 세 살, 열 한 살이 되었다.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이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이 녀석들이 20년까지는 살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길, 더 많은 기쁨을 나누길. 


아무쪼록 건강하자, 이것들아.


그러거나 말거나, 지는 천하태평.


매거진의 이전글 판소리 완창의 비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