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팜므파탈.
이전 이야기.
연금술사 프로메테우스는 ,
인간 여성들에게 ‘언어’라는 선물을 건넨다.
그들은 노래하고, 사유하고, 토론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
하지만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제우스는
질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결국 그는 프로메테우스를 신권 반역자로 몰아
화형에 처한다.
이에 분노한 인간 여성들은
제우스의 신전을 돌보고 그를 섬기기를 거부한다.
제우스는 복수의 수단으로 '판도라'를 선택하여,
인간 세계로 보낸다.
그의 손에는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가
함께 쥐어져 있다.
그러나 제우스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판도라가 재앙을 퍼뜨리는 악인으로 기억되게 하고,
그를 통해 인간 여성들을 서로 갈라놓으려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신들의 왕이 설계한,
정밀한 감시와 통제 아래에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나는 제우스의 명을 받아,
인간의 형상을 갖추고 인세에 내려오게 되었다.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를 함께 지닌 채로.
바스락거리며 밟히는 꽃잎의 감촉이
어색하고 간지럽고,
온몸을 감싸며 피어오르는 달콤한 향기가 낯설었다.
'아 이곳이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구나.’
곧 마주치게 될 광경은
상상하지도 못한 채로,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마을로 향했다.
‘바스락, 바스락.’
발가락 사이를 기분 좋게 간지럽히던
꽃잎이, 잎사귀가, 작은 돌부리들이
마을 초입에 다가갈수록
날카롭게 살갗을 파고들었다.
날카로운 풀과 돌에 베인 발의 상처에서
피가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꽃잎이 붉게 물들어갔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불길한 느낌의 정체를
눈앞에서 마주하고야 만다.
제우스로 인해 폐허가 된 마을.
갈 곳 잃은 절망과 비탄,
분노와 슬픔,
증오가 한데 엉켜
사나운 바람과 함께 허공에 나부끼고 있었다.
더 이상 마을에서는,
나뭇잎 사이를 속살거리며
퍼져나가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망부석처럼 선 채.
그 참담한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몇 번을 망설이다가,
마을의 초입에 발을 들였다.
제우스는 내게 몇 번이고 당부했었다.
“판도라. 상자를 열어서는 절대 안 돼.
만일 금기를 어기고. 상자를 열면
이 세상에 끔찍한 재앙이 퍼질 거야.”
그러나 신들의 왕 제우스여,
상자 밖의 세상은,
이미 당신으로 인해
재앙에 빠져있나이다.
날카롭게 날아와 박히던 시선들.
다문 입 너머의 수많은 말들.
시선에도 무게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소문을 알게 되었다.
소문을 퍼트린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제우스였다.
"네가 제우스의 정부로구나!"
“저는 판도라입니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를 감시하러 왔지?”
내 마음도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세상을 멸망시킬 악녀!"
그러니, 그들이 내게
적의를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우스의 목소리가 을씨년스럽게 속살거렸다.
"나를 대신하여
이 땅을 멸망시키고,
만악의 근원으로 기억될
판도라여.
본디 여인은 사내와 같은
'의'가 없는 족속들이니,
그들은 너를 시기 질투하여 핍박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나의 권세를 등에 업고,
나를 대신하여 그 죄 많은 여자들을 모조리 멸하라.”
-라고 제우스는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떠들었지만, 나는 그들이 궁금하고 또 알고 싶었다.
어디선가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화살이 뺨을 스쳤다.
마을 초입에서 망을 보며, 마을을 지키던 에피메테우스가 날린 화살이었다.
나는 그를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화살이 스쳐간 자리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환영 인사가 참으로 따뜻하군요.”
“다음엔 뺨이 아니라,
네 목을 통째로 날릴 것이다!
이 마을에서 썩 꺼져라.
제우스의 끄나풀!”
나와 에피메테우스사이에 날 선 말들이 오고 갔다.
"판도라입니다."
“뭐?”
“제 이름이요.
그놈 끄나풀이 아니라.”
제우스의 눈과 입을 통해서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 무슨 헛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꿍꿍이를 밝혀라!”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어째서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해야만 했을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우스는 속단했다.
‘서로의 끔찍한 적이 되겠구나.’
24시간 365일 인간들을 감시하며,
호시탐탐 그들을 응징할 기회만을 노리는 신들의 왕은 크게 기뻐했다.
“... 저는 신들의 선물을 받은 자.
당신들을 만나러 이곳에 왔습니다.”
어두운 공허를 지나,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노래하고, 춤추고, 사유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그대들의 빛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신들이 궁금해요.
더 알고 싶어요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던 이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판도라의 말을 가만히 듣던 에피메테우스가,
판도라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너 말이야,
이 마을에서
허튼짓하면, 내 손에 죽는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대들을
처음 만난 이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우리의 인연이 아주 오래된 고대의 예언,
제우스의 두려움의 근원에서 시작된 것은
꿈에도 모른 채.
“가장 낮은 곳에서 온 자가,
이 땅을 번영하는 진정한 빛이 되어,
피로 물든 왕좌를 불태우고 그 자리를 차지하리라.”
안녕하세요. 창작자 김하녹입니다.
오늘도 소설 <헬라의 묠니르>를 감상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온하고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늘 감사드리며,
김하녹 올림.